[한주를 열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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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 박노훈 목사(신촌성결교회)
  • 승인 2023.12.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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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훈 목사 / 신촌성결교회
박노훈 목사 / 신촌성결교회

찬송가 475장은 “인류는 하나 되게 지음 받은 한 가족 그 속에서 협조하며 일하는 형제와 자매로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2013년 이후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조사에서 매년 응답자의 90% 이상이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종교 분쟁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에 이어 심각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뿌리 깊은 이념 갈등 외에도, 계층별, 성별, 세대 간, 노사, 종교와 지역 등으로 그 갈등은 더욱 다층적이며 복합적이고 동시다발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리 사회가 급박하게 겪어온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의 상이한 역사적 경험들이 한 세대 안에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19.7%나 되는 통계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한국 사회에 미치는 힘이 큽니다. 기독교계 내에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은 사회로 번져가고, 기독교계 내에서부터 갈등이 사라진다면 그 또한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갈등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비유는 잃어버린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비유 속의 아버지는 도저히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탕자’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그 안에서 포옹과 입맞춤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 밖에서 잃어버린 자녀와 집 안에서 잃어버린 자녀를 식탁에 초대함으로 그들을 운명공동체로 빚어냅니다.

한 식탁에서 음식을 서로 나눔은 타인을 내 삶 속으로 영접하는 일이고, 나아가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는 ‘비용’과 ‘이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기뻐하는 ‘우리’ 속에서 이익과 비용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랑과 배려가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셨습니다(눅 31~32). 

탕자의 비유는 요구하는 아들과 유화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시대를 드러내고 자신과 타인의 간격을 넘어서는 대안을 만들어 갑니다. 아버지가 그의 아들들과 대화하며 토론하였던 것처럼, 비유는 청중을 불러 모으고 그들과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토론하며 공동체의 정신과 감성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던 아버지의 정신과 태도, 감성을 가질 때, 우리는 적대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본질을 깨닫고 ‘허위적’ 적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갈등과 투쟁을 심화하고 선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싸고 치유하는 사랑과 평화의 매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마음속 깊이 경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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