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각, 잘 지키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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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각, 잘 지키십니까?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11.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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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62)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성탄절이 되면 교회마다 주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칸타타 등을 연주한다. 40여년 전, 내가 지휘하던 찬양대도 몇 달 전부터 칸타타를 준비해왔다. 마침 수요일 저녁이 성탄 이브여서 그날 예배 때에 발표를 하기로 했다. 연습을 위해 직장에서 일찍 퇴근하여 교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근데, 폭설이었다. 버스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연습을 시작할 시각이 되었지만,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요즘처럼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시계만 들여다 볼 뿐이었다. 

”한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약속 장소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한 시간이 정말 길다는 것을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일 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일 분의 절박함을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일 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간신히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 짧은 순간에 삶과 죽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줄 것입니다.“ 더글러스 아이베스터 코카콜라 회장의 이 말이 정말 실감이 났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렸고, 버스의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다. 연습은 포기하고, 제발 예배 시작 전에만이라도 도착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시계바늘이 예배 시각을 가리켰다. 앞이 캄캄했다. 몇 달 전부터 연습해온 칸타타였는데… 설교를 짧게 해달라고 부탁은 왜 했던지. 30분이나 지나서야 교회에 도착했지만, 예배당에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고개를 숙인채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아, 목사님과 찬양대원과 교우들이 박수로 날 맞이해주는 게 아닌가.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온 교우들이 성탄찬송을 부르며 지휘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주를 시작했다. 내 평생 이때처럼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지휘를 한 적이 드문 것 같다.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모든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온 교우들에게 큰 폐(弊)를 끼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가 내게는 ‘폭설 크리스마스’로 들린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라.“ 
우리는 ‘시간(時間)’과 ‘시각(時刻)’을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은 길이(hour)이고, ‘시각’은 때(time)이다. 그러니 ‘약속 시간’은 ‘약속 시각’이라고 하는 게 맞다. 시각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시간은 아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시간은 금(Time is gold)“이라고 했지만, 시간은 저축이 불가능하다. 시간으로 돈을 얻을 수는 있지만, 돈으로 시간을 얻을 수는 없다. 시간이 곧 인생이요, 생명이다.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그래서 내 시간이든 남의 시간이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약속 시각에 늦거나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수가 있다. 이는 상대방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일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낮게 여길 때 나타난다.    

조직의 리더는 특히 시각과 시각을 잘 지켜야 한다. 열 명을 모이게 해놓고 10분 늦게 가면 100분이 늦는 것이다. 연설을 10분 더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인이 된 엘지그룹 구본무 회장은, 상대가 누구든 언제나 20분 전에 약속 장소에 와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니 그를 만나는 이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권력가나 재력가들은 늘 상대방을 기다리게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렇다. 1시간 지각은 보통이다. 그는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4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45분을, 심지어 교황도 50분이나 기다리게 했다.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간도 존중해줘야 한다. 내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 제안해오는 시각 약속을 거절하라는 말이 있다. 약속을 많이 할수록 내 시간이 없어지니까. 약속을 잘 지키려면 약속을 하지 말라고도 한다. 약속을 많이 할수록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지니까. 습관적으로 약속 시각을 어기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다. 늦은 이유를 늘 그럴듯한 거짓말로 둘러대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지켜야 한다. 상대방보다 먼저 도착해서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게 좋다.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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