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마지막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셨나요?
상태바
[시니어 칼럼]마지막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셨나요?
  • 홍보옥 웰다잉 강사(각당복지재단)
  • 승인 2023.11.23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28

허리가 아프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은 것은 2021년 6월이었다. 팔십을 넘긴 나이에 흔히 겪게 되는 퇴행성 질환이나 디스크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엄마의 진단명은 ‘급성 다발성골수종’으로 혈액암이었다. 

PET-CT(암의 영상 진단 방법 중 가장 초기에, 가장 정확하게 암을 찾아내는 최첨단 검사 방법)를 한 결과 암세포가 머리뼈와 빗장뼈, 척추와 넓적다리부 그리고 정강이뼈를 부수고 있었고 순식간에 하반신 마비가 왔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암이라는 의사의 말은 거짓말 같았고, 암세포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CT 사진들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엄마의 통증은 인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온몸에 땀을 비가 오듯 흘리며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할 수 있는 것은 방사선 치료를 통해 암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었지만 치료 하면 할수록 엄마는 더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다. 어느 날 아침 회진 시간에 “막내야 이제 엄마를 좀 놔라.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야. 너만 엄마를 놓으면 다 편해지는 데 왜 못 놓니…”라며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담당 의사께 “선생님, 나는 내가 더는 못 산다는 거 알아요. 그리고 이렇게 고통스럽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나를 좀 편하게 있다가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하였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고 어머니를 호스피스병실로 옮겼다. 그리고 2주 후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셨다. 

만약 어머니가 발병 전 건강한 상태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연명치료가 결코 효(孝)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영 헤어져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두려움은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연명치료 중단이나 유보 결정을 가족이 선택하기는 몹시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웰다잉 강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그동안 해왔던 강의 내용과는 다르게 아이처럼 쩔쩔매며 어찌할 바를 몰라 힘겨워했던 일들을 부끄러운 고백으로 하는 이유는 이 순간에도 차마 손을 놓지 못하고 연명치료를 하고 있을 가족에게 위로를 전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며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