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치 취했지만 당했다… 날개 피려던 청년 세대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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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치 취했지만 당했다… 날개 피려던 청년 세대 ‘피눈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11.21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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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본 2023 사회이슈(1) 전세사기 // (상)그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그저 퇴근 이후 노곤한 몸을 쉬게 할 아늑한 보금자리를 바란 죄밖에는 없다. 분에 넘치는 호화로운 공간을 욕망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제 한 몸 누이면 족할, 고작해야 방 한두 칸에 미소짓고는 야무지게 살림살이를 채워 넣던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형제자매이자 아들, 딸이었으며 친구였고 이웃이었다.

그들의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은 단 한 순간에 무너졌다. 지난해 말부터 전국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전세사기’에 이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행복의 시작일 줄 알았던 집은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의 빚이 되어 일상을 덮쳤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수는 전국적으로 1만 세대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2022년 12월 소위 ‘빌라왕’이라 불리는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래 꼬박 1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1년 동안 상처가 봉합되기는커녕 곪아 벌어졌고 피해자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이제 막 날개를 펼치려는 나이에 날개가 꺾인 크리스천 청년들도 상당수다.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전세사기 피해는 전국적으로 1만 세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전세사기 피해는 전국적으로 1만 세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이철빈 씨(31)는 2년 전 셰어하우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처음으로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 전역을 돌았다. 1순위 주거 형태는 당연히도 전세. 대출 정책이 잘 되어 있어 월세를 절감할 수 있는 전세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첫 집이었던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발에 땀이 나도록 알아보기를 두세 달. 노력의 보상이었는지 맘에 쏙 드는 매물을 발견했다. 혼자 살기 적합하도록 가구가 잘 갖춰진 깨끗한 원룸이었고 직장과의 거리도 나쁘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철빈 씨가 사기를 당할 만큼 허술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부동산 관련 스타트업 회사에 근무했고 성경적 토지정의를 외치는 단체 ‘희년함께’의 운영위원으로 섬길 만큼 부동산에 관해서라면 적어도 무지하지는 않다고 자신했던 그였다. 할 수 있는 조치 역시 모두 취했다. 하지만 작정하고 덤벼드는 조직적인 사기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당연히 등기부 등본부터 떼봤습니다. 근저당도 없고 채무관계도 깨끗했어요. 게다가 보증보험 가입 의무가 있는 민간 임대주택이었으니 이런 좋은 집이 어디 있나 싶었죠. 그럼에도 만전을 기해 경험 많은 지인에게 물어보고 공인중개사를 끼고 계약 날에도 직접 등기부 등본을 한 번 더 확인했어요. 대출 심사도 원활했고 전입신고도 마쳤습니다.”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을 느낀 것은 고작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가입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전세 보증보험이 소식이 없어 임대인에게 연락하자 ‘심사가 오래 걸린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상함을 느껴 등기부 등본을 다시 발급하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1년 11월 계약 당시엔 깨끗했던 등본에 2022년 1월부로 세무서 압류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세금 체납이 알려진 것만 63억원 이상에 달했다. 당장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종부세가 많이 나와 체납이 됐다’는 변명으로만 일관했다. 그것이 임대인이 받은 마지막 연락이었다.

 

“더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누군가는 사기 피해자를 바라보며 동정의 시선과 동시에 ‘어떻게 그런 사기를 당할 수 있느냐’는 뒷말을 덧붙인다. 조금만 꼼꼼히 알아보면 그런 사기쯤은 피할 수 있는데 피해자의 안일한 태도에도 책임이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철빈 씨는 그런 시선에 통탄하며 되묻는다. “무엇을 더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제가 지금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2년 전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해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제게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고 해도 저는 이 집을 거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어요. 세입자들이 알 수 있는 정보로 사기를 피해가기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철빈 씨가 꼽는 전세사기 사태의 결정적 원인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다. 임대인이 정말로 자기 자본을 가지고 상환 능력이 있으면서 임대 사업을 하는 건지, 혹은 흔히 말하는 ‘무자본 갭투자’를 해서 ‘깡통 주택’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임차인으로서는 충분히 알 방법이 없다. 철빈 씨가 당한 것처럼 고액의 세금 체납이 있었다고 해도 실제로 압류가 걸리기 전까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설령 임대인에게 직접 물어본다 해도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절하면 그만이다.

“주택 시장에 있어 임차인은 철저한 ‘을’입니다. 근저당이 없는 집을 선택하라고 팁처럼 공유되곤 하지만 등기부 등본 떼보면 근저당 안 걸린 집을 찾기 힘들어요. 정말 깨끗한 집을 찾으면 너무 오래됐거나 입지나 좋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죠. 그렇다 보니 괜찮은 집을 찾으면 공인중개사도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채갈 것’이라며 계약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터지고 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요. 한 개인, 그것도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인 피해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부담스러운 금액을 오롯이 떠안아야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이철빈 씨는 임차인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사기를 피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이철빈 씨는 임차인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사기를 피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무너진 일상

피해자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철빈 씨는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후 “머리가 멍하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고백했다.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고 까딱 넋 놓고 있으면 눈물이 맺힌다. 신앙심 깊은 철빈 씨조차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자책도 많이 했었다.

“피해자들은 삼중고의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당장 감당하기 힘든 돈도 잃은 상황인데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신용도 잃게 되죠. 게다가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면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는데 강제 퇴거까지 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사기 피해 이후 1년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정말이지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사기를 쳤는지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피해를 인지한 다음부터는 평범한 일상이 정지된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극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피해자들이 뭉친 단체 채팅방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렇게라도 소통하는 이들은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한다. 너무 큰 상처로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이들은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다 세상을 등지기까지 한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피해도 있다. 사기 피해 발생 이후 임대인은 대부분 손을 놓는다. 일부는 사망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집주인이 해결해주어야 할 문제가 나타나도 제대로 된 조치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거나 집에 누수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고, 건물 공용관리비를 내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전국적인 피해가 발생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된 피해 파악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자들은 정부 차원에서 실태 조사를 해달라고 부르짖지만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고 있는 이유는 피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추홀구 2천 세대, 김대성 씨 1,100세대처럼 언론에 보도되고 알려진 사례는 사실 경찰이 수사해서 발표를 하는 경우일 뿐입니다. 먼저 가해 임대인들의 정보와 깡통 주택 현황, 피해자들의 실태가 제대로 조사돼야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이 만들어질 텐데 첫 단추부터 어긋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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