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3번 진통주사 맞지만 고통보다 크신 하나님이 내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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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3번 진통주사 맞지만 고통보다 크신 하나님이 내 힘입니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3.11.16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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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자오나눔쉼터 양미동 목사

오른팔 망가지고 전신화상에도 주님 안에서 늘 감사
재소자 위한 성경필사, 소록도 김장김치로 나눔 확산
자오나눔쉼터를 이끌고 있는 양미동 목사는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됐지만, 주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해 나눔과 사랑을 흘려보내고 있다. 그는 중지손가락으로 컴퓨터 엔터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꿈 많고 끼 많던 20대 청년의 팔이 공장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술 한잔하려던 퇴근길에 기계 속 이물질을 발견했다. 목장갑이 걸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이었다. 팔에 있는 모든 신경과 힘줄은 끊겼고 뼈는 72조각이나 났다. 

절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속절없는 상황에서도 그저 살아보겠다며 몸부림치던 청년은 가게를 운영했다. 불편한 팔로 석유난로에 기름을 넣다 나일론 소재 옷에 불이 붙었다. 장애가 없었다면 제대로 대처했을까.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전신 75%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죽는다고 했다. 도저히 생환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왼쪽다리 고관절마저 끊어져 쓸 수 없게 됐다. 

이제 그 청년의 나이가 60대 중반이 됐다. 뼈가 으스러지고 전신에 화상 흉터가 남은 것만은 아니었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몸이 찢기는 고통이 남아 매일 진통제 주사를 3대씩이나 스스로 놓아야 한다. 한번 통증이 찾아오면 정신을 차릴 수 없어서다. 

그래도 감사하단다. 주님을 만나서 감사하단다. 자오나눔쉼터와 자오쉼터교회를 이끌고 있는 양미동 목사(64)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담임목사님의 뜨거운 눈물이…
양미동 목사는 일생 중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고난을 수차례 겪어야 했다. 처음부터 신실한 신앙인은 아니었다. 교회에 나가는 형제들에겐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때리던 사람이다. 장애를 안게 된 그를 교회 앞자리에 데려다주면, 설교를 듣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비아냥거렸다. 행사 후 교인들을 꼬드겨 술을 마시고, 교회 옆에서 대놓고 담배도 피워댔다.

“제가 이규환 목사님이 시무하는 부천 목양교회 출신입니다. 지금까지 전신마취를 22번이나 했어요. 작년에도 고관절 부위에 썩어가는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도 했고요. 처음 전도를 받았을 때는 16번째 전신마취를 했던 시기입니다. 어느 날 제게 주님의 은혜가 찾아왔습니다.”
목양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했던 때 누군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와 안수기도를 해 주었다. 담임목사님이었다. 

“어떤 손 하나가 아픈 부위를 만지더니 뜨거운 게 떨어지는 겁니다. 목사님의 눈물이었어요. 목사님의 눈물을 경험하면서 제대로 깨졌습니다. 그 때 은혜를 받고는 극동방송에 나오는 설교를 한 손으로 타이핑하기 시작했습니다. 25분 설교 한편을 치는데 18시간 걸렸어요. 손가락 하나 쓸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오른손 중지로 엔터가 쳐지는 겁니다. 8시간으로 줄었는데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양미동 목사는 영적 스승 이규환 목사의 설교를 지금도 타이핑하고 있다. 설교를 기록하면서 성경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신학공부까지 하게 됐다. 양 목사는 지금도 “담임목사님의 속뜻을 알고 싶으면 설교 타이핑을 해보라”고 도전하곤 한다.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님의 수고, 마지막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모든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고 추천한다. 

역경을 극복하도록 다시 새 힘을 
절망의 긴 터널을 지나 양미동 목사는 자오나눔선교회를 설립하고 자오나눔쉼터를 개원하면서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애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에 순종하기로 했다. 

“목사님께 장애인들을 위한 그룹 홈을 10개 만드는 꿈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내는 제 꿈을 알고 쉼터를 시작하자고 제안해주었고요. 겨우 땅을 살 수 있는 비용으로 화성시 마도면에서 쉼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원도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뜻밖에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사채를 빌려 썼는데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나중에 쉼터가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 스트레스가 컸던 아내가 숨진 채로 발견된 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남겨진 빚을 청산하던 중 홀로 변론하며 승소도 했지만, 2심은 어림없었다. 시설과 주택을 모두 넘겨주고 딱 30만원만 남았을 정도로 힘겨웠다. 주변에서 십시일반 모금해주어 겨우 농가주택 하나를 얻어 장애인들과 같이 새로운 터전을 꾸렸다.

처음엔 우리를 싫어하던 마을 주민들은 이내 양 목사와 가까워졌다. 소탈한 양 목사를 마을 어르신들을 무척 좋아해 주었다. 심지어 신앙이 없던 부동산 사장까지 나서 새로운 쉼터 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지금의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에 위치한 자오나눔쉼터 자리이다. 

“화장실이 3개 있는 2층 건물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계약했습니다. 돈은 부족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매번 사람을 붙여주셔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사 온 첫날 바로 옆에 있던 버섯저장고를 달리고 기도했더니, 3년이 지나 매입해달라는 요청이 온 겁니다.” 

주변 시세보다 비싸 도저히 살 수 없었다. 그런데 땅 주인이 한참 지나 임야를 대지로 전환하면서까지 매물로 가져왔다.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대출이 연결됐다. TV 간증 프로그램을 본 믿음의 손길들이 후원 대열에 동참해주었다. 누군가는 어머니 유산을 헌금했다. 한 은퇴목회자는 쉼터를 찾아왔다가 1억4천원을 헌금하기도 했다. 목양교회는 3천만원을 후원하며 여전히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주었다. 

양미동 목사는 자오나눔쉼터에서 16명의 중증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양미동 목사는 자오나눔쉼터에서 16명의 중증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올해 봄 쉼터 식구들과 다녀온 제주도 나들이 모습.

감사로 받은 은혜 다시 흘려보내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양미동 목사가 감사할 것이라곤 없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감사가 흘러넘친다.

“저는 운전을 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쪽 다리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는데요. 만약 반대로 다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75% 화상을 입었는데 얼굴은 멀쩡한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굴까지 다쳤다면 내 성질에 아마 죽었을 겁니다. 두 아들이 곁에서 쉼터를 섬기고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쉼터를 위해 최고의 동역자들이 함께해 감사하기만 합니다.”

매일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불편한 몸이지만 양미동 목사는 또 다른 나눔과 돌봄 사역에도 열심이다. 대표적인 사역이 한센병을 앓았던 소록도 주민들을 위한 김장김치 나눔이다. 장애를 갖게 된 후 소록도를 방문했다가 자신도 더 어려운 한센인들을 만났다.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해마다 11월 중하순이면 김장김치를 담가 소록도 마을 3곳에 보내고 있다. 

“올해도 소록도 권사님이 김치 기다린다고 전화하셨어요. 처음에는 3,000포기를 담갔다가 작년에는 1,800포기, 올해는 1,200포기를 담갔습니다. 코로나 기간 많이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김장김치를 담그는 날에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25일이 되면 트럭에 김치를 싣고 제가 직접 내려갑니다.”

양미동 목사의 특별한 나눔 사역은 하나 더 있다. 재소자를 위한 사역이다. 장애인 재소자들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던 안양교도소가 22년 전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더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의 모범사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후 꾸준히 교도소를 찾아 재소자들을 만났고, 특히 ‘성경필사’를 접목한 교정 사역을 펼치게 됐다. 

“무작정 영치금을 넣어주는 것보다, 먹을거리를 나누는 것보다 의미 있는 무엇을 고민하다 성경필사가 생각났습니다. 재소자들에게 필사용지와 펜을 무한정 공급해줍니다. 신약, 구약, 성경 전체를 필사하면 5만원, 10만원 영치금을 선물합니다. 억지로 필사를 시작하지만 그러다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 탓에 한글을 모르던 재소자가 그림을 그리듯 필사하다 한글을 깨우쳤다. 양 목사의 도움을 받아 고입 검정고시까지 패스했다. 또 다른 재소자는 40년 넘도록 앓던 고질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재소자들이 퇴소 후 신앙생활에 정착할 수 있도록 양 목사는 소통하며 돕고 있다. 그 공헌으로 2015년에는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포장까지 받았다. 

자오쉼터교회는 매월 130만원 선교비도 국내외 사역 현장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베트남 오지의 소수민족을 위해 염소와 장학금도 전달했다. 사례비를 받지 않는 양 목사의 헌신이 그렇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현재 중증장애인 16명이 자오나눔쉼터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80대 한명은 위암이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도 3명이나 된다. 누군가에는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양미동 목사에게는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이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이다. 아내 최정숙 사모를 만나 동행하게 된 것이 큰 감사이다.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이다. “지금도 저는 꿈을 꿉니다. 쉼터에 들어오는 장애인들을 죽을 때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10명 이하 노인시설을 법인으로 설립하고 싶습니다. 내 재산은 하나도 없이 되어도 좋습니다. 주님을 만나 받은 사랑을 평생 나누는 그 자체가 제게는 감사입니다.”

자오쉼터교회 성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20년이 넘도록 소록도 한센인들을 위해 김장김치를 담아 보내고 있다.
자오쉼터교회 성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20년이 넘도록 소록도 한센인들을 위해 김장김치를 담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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