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평생 목회의 뿌리가 되어준 백석,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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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평생 목회의 뿌리가 되어준 백석, 사랑합니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11.16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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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명예증경총회장 김연희 목사 / 신생중앙교회

1981년 연합-은혜-합동진리 통합, 하나님의 은혜
개혁주의생명신학 통해 ‘생명 목회’ 전환점 맞이해“


어느덧 은퇴할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제 목회의 울타리가 되어준 백석대학교와 백석총회, 이 두 기둥이 더욱 든든히 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저 또한 백석인의 한 사람으로 후배 목사들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며 백석의 부흥과 발전을 응원하겠습니다.”

명예증경총회장 김연희 목사. 그는 오는 19일 45년의 목회 여정을 마치고 은퇴한다. 신학교 시절, 동기들과 함께 매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단칸방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했다. 방배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석관동에 신생중앙교회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섭리다. 그중에서도 백석과의 인연은 오늘의 신생중앙교회와 김연희 목사를 있게 했다. 

신학생 시절 김연희 목사는 예장 연합 측이 운영하는 총회신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이영, 한용택, 홍찬환, 이재선, 이종정, 신서균 목사가 연합 측에 속해 있었다. 연합 측은 1981년 1월 20일 은혜 측과 통합을 했고, 이어 같은 해 12월 백석총회 전신인 합동진리총회와 통합을 이루게 된다.

교단 통합으로 연합 신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전부 방배동 총신으로 학적을 옮기게 됐다. 신학교를 마치고 목회연구원에 다닐 때 그의 기억 속 방배동은 작은 학교, 작은 총회였다. 4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 이렇게까지 성장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의 기대와 예측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축복이 바로 오늘의 ‘백석’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김연희 목사는 신학교 시절부터 목회의 사명에 불탔다. 목회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교회를 개척했다. 석관동에서 방배동까지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면서 학교에 다녔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도, 동기들과 모여 기도하는 것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열정과 현실은 달랐다. 개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해 6개월을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다. 교회는 친구 전도사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퇴원 후 돌아와 보니 친구 전도사가 인근에 교회를 개척해 떠나버리고 말았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기도하는 것 밖에는…

“하루 8시간씩 40일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 성도를 맡겨주실 때는 사랑하라고 맡긴 것이지 미워하라고 맡기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라’ 그 말씀을 붙잡고 지금까지 목회를 해왔습니다. 

1981년 진리연합으로 교단을 통합한 후 총회 명칭은 합동정통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한계로 인해 목회자들에게는 여러 유혹이 따랐다. 큰 교단에서 옮기라는 제안을 수시로 해온 것이다. 여러 목사님들이 시험에 들었지만 김 목사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큰 교단에서 비주류가 되느니 내가 선 자리에서 중심이 되자고 생각했다. 그는 제안이 올 때마다 “저는 우리 총회가 좋습니다. 가지 않겠습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가 백석에 남은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설립자 장종현 목사 때문이다. 연합신학교 시절부터 그의 스승이었던 고 이영 목사는 “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장종현 목사를 돕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다. 예장 합동 목사님 한 분도 “너는 장종현 목사님을 떠나지 말고 같이 있어라. 그분은 크게 되실 분”이라고 말하며 누차 교단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사실 신학생들이 보기에도 설립자 장종현 목사의 리더십은 남달랐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분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는 장종현 설립자를 통하여 총회와 학교가 나날이 발전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1995년 기독신학교가 천안에 교지를 구입해 대학교를 설립했어요. 허허벌판에 교사를 짓는 기공식 현장에 저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학교를 세우나’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정말 인간의 쓸데없는 근심에 불과했습니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학교는 지금 중부권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종합대학교로 성장했으니까요.”

설립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편견과 오해의 말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김연희 목사는 “우리 설립자님에 대해 저는 잘 모르지만 이 두 가지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며 “하나는 무슨 말씀을 하셔도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성경만을 이야기한다. 또 하나는 리더십이다. 장종현 목사님의 리더십은 무릎 꿇고 받은 사명에서 나오는 영적 리더십”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백석에서 받은 사랑이 많다고 고백하는 김 목사는 그중에서도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목회에 접목한 것이 가장 큰 감사제목이다.

그는 “나의 목회 여정은 개혁주의생명신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접목한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고 이 과정을 통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받아들이고 나니 목회가 신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변했다. 예수 생명으로 변화되는 목회, 예수 생명으로 변화되는 성도를 마주하면서 목회에 새힘을 얻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개혁주의생명신학이 후배들에게 뿌리내리는 것이다. 신대원에서 목회자 계절학기를 만들어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바라고 있다. “개혁주의생명신학 안에서 선후배 목회자들이 하나가 된다면 우리 총회가 더욱 든든히 발전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정리=이현주 기자

* 이 글은 백석총회 설립 45주년 기념문집 <이기는 자에게 주신 이름, 백석>에 실린 김연희 목사 글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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