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의 거리, 틈을 메우기 위한 ‘모두의 영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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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의 거리, 틈을 메우기 위한 ‘모두의 영화축제’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3.11.14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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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개막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짧은 시 ‘섬’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을 일러준다. 가족처럼 가깝게 여겨지는 관계라 할지라도 때론 타인처럼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보이지 않는 틈을 메우기 위해 ‘우리 모두의 영화제’가 마련됐다. 영화제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그 사이에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읽어내기 위한 시선을 제공한다.

‘제5회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집행위원장:강신일, 이하 모기영)’가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KT&G 상상마당 시네마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개최된다. 이번 영화제의 총 상영작은 14편이며, 장편 11편 단편 3편이다.

‘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를 슬로건으로 삼고 시작된 모기영은 그동안 네 번의 영화제를 통해 교회 울타리 너머의 다양한 관객들로부터 사랑받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거리-감’이다. 가족과 인연, 부부 관계의 갈등에서부터 소원해진 친구 사이나 다른 세대와의 관계 등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의 거리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주요 영화 4편을 소개한다.

#가족과_가족_사이
개막작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윌리엄 니콜슨, 2022)

평범하게 29년을 함께 보낸 가족이 갑자기 갈라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개막작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거리감을 조명한다. 영화는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부부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예술을 사랑하는 아내 ‘그레이스’는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러나 반대로 조용하고 신중한 남편 ‘에드워드’는 아내의 일렁이는 감정표현을 더 이상 받아내기 힘든 지경에 이른다. 결국 에드워드는 이혼을 요구하게 되고, 그동안 누구보다 남편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레이스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멀어져가는 부모 사이에 감정표현이 서툰 아들은 부모의 소식에 충격을 느끼면서도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을 조금씩 이해해가기 시작한다. 황혼기를 맞이한 부부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익숙해서 지나치기 쉬웠던 관계들의 작은 조각들을 꺼내어보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지옥과_낙원_사이
폐막작 ‘지옥만세’(임오정, 2022)

왕따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여학생들은 죽기 직전, 자신을 괴롭힌 학폭 가해자를 위한 복수를 결심한다. 사는 것이 지옥 같은 주인공 ‘쏭남’ 나미와 그의 친구 ‘황구라’ 선우는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박채린이 서울에서 멀쩡하게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그를 만나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채린이 서울에서 회심해 독실한 신자가 되어 자신을 반길 줄이야.

기껏 복수를 위해 떠났는데 자기 잘못을 인정하며 복수를 해도 된다고 말하는 채린의 반응이 그저 당황스럽기만 하다. 문제는 그들의 복수와 상관없이 채린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했기에 ‘회개점수’를 추가 획득함으로 그가 믿는 종교에서 ‘낙원행’ 티켓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복수가 원수의 구원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 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화 <지옥만세>는 밀양에 머물러 있는 영화 속 기독교의 용서와 구원 담론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평가다. 영화는 암울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섬뜩하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낸다.

#슬픔과_웃음_사이
‘코미디퀸’(산나 렌켄, 2022)

13살의 소녀 샤샤, 그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을 맞이했지만, 울지 않으려 애쓴다. 오히려 슬퍼하는 아빠를 위로하고,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한 네 가지 결심목록이 담긴 위시리스트를 작성한다. 첫째 헤어컷을 한다. 둘째 책을 읽지 않는다. 셋째 생명체를 키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코미디 퀸이 된다. 샤샤는 엄마를 잃고 힘들어하는 아빠를 웃게 해준다는 목표로 스탠딩 코미디에 도전하는 과정을 끝까지 수행한다.

어떻게든 울지 않고 버텨보려는 샤샤에게 세상은 ‘노멀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슬픔을 잊기 위한 샤샤의 ‘애씀’이 어른의 눈에는 다소 반항적이거나 돌발적인 행동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슬픔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샤샤의 마음속에는 슬퍼하는 아빠를 그저 보고만 있을 순 없다는 간곡한 마음이 녹아있다. 코미디 퀸이 되어 많은 사람 앞에서 멋진 공연을 펼친 뒤에야 그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친구와_친구_사이
‘이니셰린의 밴시’(마틴맥도나, 2023)

아일랜드의 외 딴 섬마을 ‘이니셰린’.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절친 ‘파우릭’과 ‘콜름’은 하루도 빠짐업싱 술을 마시며 술을 마실 정도로 다정하고 돈독한 친구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름은 돌연 피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그를 찾아가 이유를 물어보지만, 변심한 친구에게는 “잘못한 게 없어,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라는 차가운 한마디만 돌아온다. 이러한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피우릭은 관계를 회복해보려 노력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

평온한 이들의 일상과 함께 마을의 상황 역시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아일랜드 내전을 배경으로 끝을 향해 내달리는 망연자실한 인간상을 마틴 맥도나 감독만의 촘촘한 서사로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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