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어떤 시어머니
상태바
[은혜의 샘물] 어떤 시어머니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3.11.13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학이 있다.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지어지고 읽혔던 한글 제문(祭文)이 그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1주기와 2주기(탈상) 때, 주로 여성들이, 고인의 영전에서 읽었는데, 함께 듣는 사람들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한문 제문과는 달리, 한글 제문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어서, 그런 감동력을 발휘했다 하겠다.

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부터 한글 제문을 연구하고 싶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진품명품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구하기가 어려웠으나 하나님 은혜로 해결되었다. 나보다 먼저 수집해 오던 홍윤표, 박재연 두 분 교수가, 내 소식을 듣고는 흔쾌히 모든 자료를 건네주었다. 다른 일로 바쁘니 나더러 마음껏 연구하라는 것이었다.

긴 것은 4미터도 넘는 두루마리 필사본들은 마치 성경의 두루마리를 연상시켜 더욱 흥미로웠다. 여러 해에 걸쳐 틈틈이 해독하는 작업을 진행해 드디어 최근에 탈고하여 출판사에 넘겼다. 은퇴해 시간이 많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 44편의 두루마리를 해독하여 현대문으로 다듬으면서 확인한 사실이 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애도하는 제문은 한 편도 없다는 점이었다. 부모님, 남편, 아내, 형수, 조부모, 외조부, 며느리, 자형, 언니, 올케, 누나, 누이, 고모부 등 아주 다양한 대상을 향하여 제문을 올리고 있으나, 시어머니에 대한 제문은 없다니 충격이었다. 효부상도 있건만 왜 제문은 없을까?

왜 그럴까, 아침톡 독자들한테 물었더니 댓글이 다양했다. 시집살이가 고되어서 그랬을 거라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딸 같은 며느리 없고, 친정 엄마 같은 시어머니 없습니다.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대부분 이런 댓글이 달리고 있을 때, 고향에 있는 큰누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톡 읽고 걸었단다. 누나의 시어머님은 달랐다는 미담이었다.

“우리 시어머님은 과부인데도, 평생 동네 사람들한테 며느리인 내 자랑만 했어. 시장에서 흔한 황석어젓 사다 반찬해 드려도, 동네에 나가서, ‘우리 며느리가 황석어 사다 별미 만들어 주었다’고 하는 등, 내 흉은 조금도 안 보고, 잘하는 점만 소문내셨어.”

“동네사람들이나 친척들은, 내가 천하 제일의 효부인 줄 알아 글쎄.”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친어머니와는 달리, 속에 있는 말은 못했겠지요?”

“아니야. 다 좋다고만 하시니 불만이 있을 수 없었지. 시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많이 울었어.”

누나 시댁은 기독교 가정이다. 믿는 집안의 시어머니답게 처신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교회 다니는 모든 시어머니가 이렇지는 않은 듯하다.
은사이신 목사님의 어머니 이야기를 사모님한테 들은 적이 있다. 노사모님은 권사님이셨는데, 교회에서는 사랑의 권사님으로 추앙받는 분이었으나, 집에서는 달랐다고, 노사모님 돌아가신 후 언젠가 회고했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하고 교제할 때는 친절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귀가해 안방에 들어서자마자, 버선부터 벗어 던졌다니 충격이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원로사모님 역시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는 유교문화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부장제적 유교문화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이 원로사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과연 사모님이 진심으로 슬퍼했을까 싶지 않다.

여기 비춰 보면, 우리 사돈댁은 시골교회 장로 어머니로서 복음을 믿는 분답게 사신 분이다. 며느리의 단점은 말하지 않고 장점만 자랑했다니, 돌아가셨을 때 누나가 많이 울 수밖에 없었겠다.

우리 부부도 언젠가 며느리를 맞을 텐데, 사돈댁처럼 살고 싶다. 며느리를 내가 사랑하는 ‘아들의 배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으로 존귀하게 대해 주고 싶다. 우리가 세상 떠났을 때 진심어린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만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