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없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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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없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자
  • 박찬호 교수 백석대
  • 승인 2023.11.0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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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33) 임직자의 자세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대표적으로 침례교에서는 유아세례를 반대한다. 그 이유는 헐랭이 신자를 양산하는 것이 유아세례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앙고백이 없는데 부모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침례교에는 헐랭이 신자가 없는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세례를 받을만한 사람에게 세례를 주어야지 함부로 세례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세례를 받을만한 자격이 조금은 애매한 개념이다. 그래서 세례를 함부로 주지 말자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너무 까다롭게 세례의 조건을 따지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임직자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임직을 받을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이 임직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그런데 ‘임직을 받을만한 자격이 과연 무엇인가’라고 할 때 그렇게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장로, 권사, 집사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본인이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장로, 권사, 집사가 된 사람이 때로는 교회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임직을 받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자격이 없음에도 임직을 받고 기왕에 심기일전하여 임직에 합당한 사람으로 바뀌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임직을 받을 자격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왕에 임직을 받은 다음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자격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에 하나 천에 하나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임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자격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런 저런 직분을 허락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받은 직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섬기는 자세로 그 직분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야 한다(고전 10:31~33). 자격 없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한다. 

풀러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로버트 존스톤(Robert Johnston)의 <영화와 영성>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존스톤은 1964년 작인 <베켓>(Becket)이라는 영화를 통해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12개 부문 후보로 올랐는데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 헨리 2세(1133~89, 재위 1154~89)의 술친구 토머스 아 베켓(Thomas à Becket, 1119~1170)의 이야기이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헨리 2세는 여자들과 즐기고 전쟁을 일으키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물리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자유를 원했다. 그러나 독립적인 권위를 가진 영국 국교회의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눈에 가시였다. 대주교는 자주 헨리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헨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술, 여자, 가무’ 친구인 토머스를 대주교에 임명하는 기발한 결정을 내렸다.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하면 기막힌 결정이었다. 토머스가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자신의 새로운 소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헨리는 토머스가 대주교직을 적당히 수행하면서 옛 친구(이자 왕!)의 바람을 들어주도록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토머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함으로써 결국 캔터베리 대성당의 제단에 오르는 중에 순교한다.

이 이야기는 영국 성공회가 1935년 캔터베리 축제에서 공연할 목적으로 <황무지>(1922년)의 작가인 T. S. 엘리엇(1888~1965)에게 위촉하여 <대성당의 살인>이라는 시극(詩劇)으로 쓰여졌다. “순교는 인간의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는 신의 도구가 된 사람이며, 그는 신의 뜻 안에서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린, 아니 오히려 찾은 사람입니다. 순교자는 신에게 굴복함으로써 자유를 찾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켓>이라는 영화를 통해 존스톤은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당시 존스톤은 목사는 먼저 거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목사가 되라는 소명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존스톤은 하나님이 그분의 성령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네가 거룩할 필요는 없다. 토머스도 거룩하지 않았다. 넌 다만 내 부름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이에 대해 존스톤은 토머스처럼 응답했다: “하나님, 제 전부를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임직자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격 유무가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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