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박사의 영화 읽기]완벽을 향한 예술, 은혜를 통한 예술
상태바
[최성수 박사의 영화 읽기]완벽을 향한 예술, 은혜를 통한 예술
  • 최성수 박사(AETA 선교사)
  • 승인 2023.11.02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블랙 스완'(대런 애로노프스키, 2011년, 19세)

영화의 중심 주제를 형성하는 발레곡은 ‘백조의 호수’다. 뉴욕시티발레단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새로운 연출을 기획하고 있는 단장은 그동안의 주역이 은퇴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배역을 찾는다.

극의 주인공인 니나는 캐스팅이 되지 않을 것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단장을 찾아가고 그와의 대화에서 받은 도발적인 행위로 깊은 인상을 받은 단장은 그녀를 백조로 캐스팅하게 된다. 그러나 니나는 백조의 역할에는 뛰어난 역량을 보이지만, 왕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유혹하는 흑조의 정열적인 캐릭터는 표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흑조까지도 완벽하게 연출하기 위한 요염한 모습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하기에는 니나의 환경이 열악하기만 하다.

백조와 흑조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한 그녀의 욕망은 스스로 강박감과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하게 되고, 니나는 점점 자기 분열을 경험한다. 공연 직전까지 환시와 환청에 시달리는데, 이런 상황에서 니나는 자신의 경쟁자로만 여겨졌던 릴리를 살해한다. 백조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니나는 시체를 은폐한 후에 이어지는 흑조 연기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 준다.

영화를 묵상하면서 떠오른 질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의 양면성을 완벽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매혹적이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각인된 몇 가지 캐릭터를 어쩔 수 없이 갖고 살지만, 그 모든 일에 충실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 멀티플레이어는 하나의 이상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더더욱 이상적인 건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다.

둘째는 예술에 있어서 완벽함의 추구에 대한 것이다. 인상 깊게 본 영화 <샤인>(피터 힉스, 1996)은 데이빗 헬프갓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생애를 그린 영화이다. 헬프갓은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하에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연주하고 난 후에 정신이 붕괴한다. 예술가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이런 현상은 완벽한 예술을 꿈꾸었기 때문이 아닐지 싶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엔 정상적인 삶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볼 때 기독교 예술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고백이 뒷받침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엔 그것을 넘어서는 작품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생산될 가능성을 기대하게 된다. 이런 기대감이 전제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 분열이나 정신착란을 겪지 않고도 예술가로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은 창조주의 위임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드러내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정상을 향한 처절한 노력은 화려하게 결실되어야 함에도 빛을 발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분열과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은혜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예술가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은혜에 대한 기대, 그것만이 자기 분열과 자기파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최성수 박사.
최성수 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