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헌법재판소 VS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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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헌법재판소 VS 대법원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3.11.0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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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군형법 제92조의 6 조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2002년 이후 4번 같은 결정을 하며 그간의 위헌 주장을 일축했다. 군형법 제92조의 6 ‘추행’ 조항은 군인이나 준군인들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하는 규정이다. 군대 내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한 처벌조항으로, 헌재는 군대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 판시했다.

그런데 작년 4월 대법원은 이번 헌재의 판단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직업 군인이 영외에서 합의 하에 한 동성 성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게다가 원심을 파기해 환송한 사건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은 쉽게 말해 군인 신분이라 하더라도 영외에서 자발적으로 합의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결정은 판결 직후부터 군대라는 특수성과 분단 현실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부족했다는 비판이 크게 일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합헌 판결문에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군의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2004년 군인 간 영외 합의에 의한 항문성교, 구강성교에 대해 유죄를 판결한 고등군사법원은 판결을 유지한 바 있다. 역시 군의 특수성 때문이다.
특별히 대한민국 군은 지원병 제도가 아니라 징병제이다. 계급에 따른 위계로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숭실대 법대 이상현 교수는 복무 중인 군인 671명에 대한 성폭력 연구에서 한국 군인은 미국보다 더 많이 성폭력에 노출됐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동성 간 성폭력 피해자의 83.5%는 두 번 이상의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피해자의 56%는 가해자가 됐다. 

간혹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재판 결과와 관련해 힘겨루기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번 헌재 판결이 대법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단의 현실과 현행 군복무 시스템을 고려해 대법원이 판례를 다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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