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실로암’과 ‘주여 당신께’
상태바
[은혜의 샘물] ‘실로암’과 ‘주여 당신께’
  • 최운식 장로
  • 승인 2023.10.25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운식 장로
최운식 장로/서울장위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얼마 전 주일예배 시간에 담임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이란 제목의 설교를 하셨다. 예수님께서 실로암에서 날 때부터 앞 못 보는 장님을 고쳐주신 기사이적(요 9:1~11)을 바탕으로 하신 설교 말씀으로, 아주 은혜로웠다. 그 뒤에 함께 부른 복음성가 <실로암>은 설교 말씀과 연관되어 큰 감동을 느끼게 하였으므로 힘차게 불렀다. 그런데 옥에도 티가 있듯이 가사 중에 ‘주여 당신께’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실로암은 예루살렘에 있는,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을 지닌 연못이자 예수님께서 장님의 눈에 침으로 갠 진흙을 발라준 뒤에 실로암 물에 씻게 하여 눈을 뜨게 한 곳이다. 이로써 실로암은 장님이 눈을 뜨게 한 기적의 연못, 어두움을 밝힐 빛을 비쳐주는 신성한 연못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실로암>은 1981년에 신상근 목사가 작사 작곡한 복음성가이다. 이 곡은 신 목사가 젊은 시절에 고난과 좌절을 겪다가 주님의 은혜로 삶의 희망을 찾고, 그 은혜에 대한 벅찬 감동을 표현한 곡이다. 이 곡은 사람들에게 장님이 눈을 뜨게 한 실로암처럼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해준 은혜로운 찬양이다. 40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불려 왔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아코디언을 가르쳐 주시던 장로님이 악보를 주셔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곡을 은혜로운 설교 말씀에 이어서 부르니 가슴에 큰 울림이 왔다. 그래서 높은 음이 잘 나오지 않지만, 목청을 돋우어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런데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후렴 부분의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이라는 대목에서는 크게 부를 수 없었다. ‘오 주여 당신께’란 표현은 현대인의 언어감각에 맞지 않을 뿐더러 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에 아코디언으로 연주할 때의 느낌도 되살아났다. 주님께 무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여’에서 ‘-여’는 호격조사이다. 호격조사는 고유명사나 인칭대명사가 누구를 부를 때 쓰일 수 있도록 해 주는 조사로, ‘아/야’가 있다. ‘아’는 자음 뒤에, ‘야’는 모음 뒤에 쓰인다. 호격조사는 대개의 경우 친구 사이에서나 아랫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다. ‘아/야’의 존대형으로 ‘여/이여’ 및 ‘이시여’가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 대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고, 기도문이나 시적 표현 등에서 쓰인다(국립국어원, 한국어 문법1, 432쪽 참조). 이렇게 볼 때 ‘주여’라는 표현은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나, 일상의 언어로는 어색한 표현이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부를 때 ‘아버지여’, 또는 ‘어머니여’라고 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여기서는 ‘-여’라고 하는 호격 조사를 써서 ‘주여’ 하는 것보다는 ‘주님’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당신’이란 말은 2인칭대명사로 쓰일 때와 3인칭 재귀대명사로 쓰일 때에 상대방을 높이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국립국어원, 한국어문법1, 380쪽 참조).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할 때에는 조금 높이는 뜻이 있다. “당신 요즘 피곤하시죠?”라고 할 경우에는 부부 사이에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뜻이 있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거야”는 상대방과 싸우면서 상대방을 낮추어 말할 때 쓴다. ‘당신’을 3인칭 재귀대명사로 쓸 때에는 아주 높이는 뜻이 있다. 재귀대명사란 체언을 도로 나타내는 삼인칭 대명사로, ‘저’·‘자기’·‘당신’ 따위가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당신의 책을 소중히 다루셨다.”라고 할 때에는 할아버지를 아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주, 주님’은 하나님 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로암>에서는 가장 높여야 할 분을 ‘주여’ 하고 부르고, 이어서 ‘당신’이라고 하였다. 이 경우에 ‘당신’은 3인칭이 아닌 2인칭 대명사로, 낮추거나 조금 높이는 표현이다. 따라서 ‘주여 당신께’는 아주 높여야 할 주님에 대한 표현으로 적합하지 않다. ‘주님 주님께’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전해 오는 말 중에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몰랐더라면 ‘주여 당신께’란 표현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감동적인 찬송을 부르면서도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법에 관해 조금 아는 게 병이 된 탓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주여 당신께’란 구절을 아무 저항감 없이 부르고, 널리 퍼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작사자는 조금 더 유의하여 가사를 쓰고, 그 곡을 부르는 사람은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부르는 기본 지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