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쏟아지는 시대, 표절문제에 경각심 가져야
교단별로 세부적인 규정과 윤리지침 마련해야
A 성도는 자신의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매 주일예배를 통해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에 큰 은혜와 위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의적절하게 본문과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예화와 간증을 토대로 전하는 설교는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그렇다 보니 지인들에게도 말씀들 들어볼 것을 권유하며, 유튜브 영상을 전송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지인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설교와 내용이 비슷하다며, 영상 링크를 보내왔다. 영상을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점에서 차이가 날 뿐 성경 본문 해석이며 예화, 제스처까지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믿었던 목사님에 대한 충격과 배신감에 그는 다니던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전해 들었지만, 자신이 수년 동안 신뢰하고 따랐던 목회자가 5년 동안 103편의 설교를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 수준으로 표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온라인을 통해 ‘설교’를 접하기 쉬운 시대가 됐다. 키워드 하나만 검색해도 각종 OTT를 통해 수만 가지의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자신이 원하는 ‘신앙 콘텐츠’를 입맛에 따라 골라볼 수 있게 됐다. 같은 성경 본문 하나에도 수많은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표절에 대한 심각한 인식이 없는 목회자들은 쉽게 설교 표절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로 2021년 과천 A 교회의 위임목사가 취임 이후 5년 동안 103편의 설교를 표절한 사실이 드러났다. A 교회가 소속된 예장 합동 중경기노회 재판국은 봄 정기총회에서 A 목사의 표절 설교 사실을 인정해 강도권 6개월 정지 판결을 내렸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평가다. 설교 표절문제가 심각한 윤리적 범죄이자 타인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라는 인식 자체가 미흡한 것이다.
어디까지가 표절일까?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표절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표절(剽竊)’은 다른 이의 창작물을 훔친다는 뜻으로 도둑질할 ‘표’와 훔칠 ‘절’이 합해진 한자어다. 표절을 뜻하는 영어 plagiarism은 ‘유괴’라는 뜻의 라틴어 플라기아리우스(plagiarius)가 그 어원이다. 이러한 뜻만 보더라도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거나 아이를 납치하는 수준의 심각한 범죄행위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표절방식에 대해서는 타인의 텍스트를 그대로 복사했거나 출처 없이 인용함, 단어나 문장순서 등의 구조를 바꾸는 것, 인용부호를 적절히 사용하지 않는 것, 부정확한 자료의 인용 등을 일컫는다. 통상적인 논문의 표절 판단 기준인 표절률은 15~20% 이상으로 이러한 기준에 따라 설교 표절의 여부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표절의 정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설교자가 일정한 의도를 갖고 설교를 표절한 경우라면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의외로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 표절을 심각한 문제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목회자 3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교 준비, 설교문 작성 실태 및 의식조사>에서는 무려 43%의 목회자가 “타 목사의 설교를 그대로 사용한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미디어의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다른 이의 설교문을 베끼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목회자 설교 표절의 이유로 새누리2교회 안진섭 담임목사는 목회자들이 설교를 단순히 교회 성장의 도구로 생각하기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교인들은 좋은 설교자를 찾아 쇼핑하듯 교회를 찾고, 교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경쟁하듯 교인들을 끌어들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목회자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전달하는 설교의 본 목적을 잊고 표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고 밝혔다.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욕심으로 인해 설교자의 삶이 담긴 증언이 되어야 할 설교는 표피적 감동을 추구하는 연설로 전락해버렸다는 지적이다. 안 목사는 “물론 설교가 교회 성장이라는 결과를 낳을 순 있지만, 교회 성장의 방편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한국교회가 ‘설교 표절’에 있어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목회자의 윤리 기준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을 요청했다.
세상의 ‘윤리’보다 높은 기준으로
“저는 설교 한편을 위해 30시간은 족히 준비합니다. 눈 뜨자마자 기도하며, 잠들기 전까지 설교 본문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예배 시작 1분 전까지 집중해 준비합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주일예배 설교 한편을 위해 30시간 가까이 준비한다고 밝혔다. 정해진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설교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인들 앞에 정직하게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의 모습은 대부분 이와 같을 것이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한국교회 목회자 8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한국교회 목회 실태> 조사에서는 담임목사 1인당 평균 8시간 54분을 준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일예배, 40분의 설교를 위해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장장 9시간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12년에 비해 2배가 증가한 수치다. 목회자들이 10년 전보다 설교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설교 한편을 위해 목회자들은 일주일 내내 말씀을 묵상하며,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설교 준비를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가 이렇게 마음을 다해 준비한 설교를 믿었던 목회자가 무작정 짜깁기하거나 그대로 베껴 마치 자신이 준비한 것처럼 설교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교인들이 받을 충격과 상처는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 교단에서는 윤리강령을 통해 설교 표절을 금지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예장 통합은 <목회자 윤리강령>에 설교 표절을 부정직한 행위라고 거론하고 있으며, 예장 고신은 2017년 제67회 총회에서 “설교 표절은 설교자가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자기가 작성한 것처럼 반복적이며 위선적이면서 의도적으로 도용하여 편집 또는 인용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행위자에 대해서는 “1차 견책을 실시하고, 행위가 반복될 경우 엄중 시벌해야 한다”는 대책에 대해서도 명시했다.
기성과 예성, 나사렛의 3개 성결교단 연합회인 한국성결교회연합회는 지난 2021년 목회자 윤리강령을 채택해 목회자 생활부분에 ‘목회자 설교나 글을 표절하지 않으며, 서류 위조 및 변조를 하지 않는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표절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설교 표절이 드러났을 경우 어떻게 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교단별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세부적 기준 마련 등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제는 ‘본질로 돌아갈 때’
많은 목회자들은 잦은 예배와 심방, 상담 등의 일정으로 말씀 묵상과 개인기도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마음이 분주해진 선교자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타인의 설교를 검색해 자신의 설교인 것처럼 교인들에게 전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일부 목회자들은 분주함을 이유로 설교 표절을 합리화하기도 하지만, 이는 다른 이의 것을 훔쳐다 쓰는 ‘거짓’에 해당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스콧 M. 깁슨은 <설교 표절로부터의 해방> 저서에서 설교 표절은 하나님과 목회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며, 교인들에게도 설교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죄라고 경고한다. 그는 “예수는 참되고 부지런한, 곧 신실한 종들을 찾고 계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면서 “설교 표절은 하나님이 각 설교자에게 주신 은사를 탕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목회 현장에서는 ‘챗GPT’의 활용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목회자 절반이 이미 ‘챗GPT’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으며, 20% 이상이 설교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AI 시대, 챗GPT의 다양한 목회적 활용은 목회자들의 설교 준비와 교인들의 신앙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데이터에 기반해 설교 본문을 작성하는 챗GPT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려우며, 자칫 설교자의 충분한 묵상과 깊은 연구 등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신학자들은 챗GPT를 활용해 설교 본문을 작성하거나 인용할 경우 출처를 정확히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승우 박사(대신대 실천신학)는 2023년 개혁신학회 ‘인공지능의 설교활용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인공지능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용된 문명의 이기라는 점에서 바른 신학적 소신을 가지고 수용한다면,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챗GPT로 설교 전체를 만들어 설교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챗GPT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설교자의 고민이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담겨있지 않는 인공지능의 설교문은 무용하다는 것. 이 박사는 “설교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부르심과 공동체를 통해 맡겨진 사명, 영혼을 향한 갈급함, 말씀을 사모하는 청중을 향한 사랑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결여된 설교는 설교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명 목회자의 완벽한 설교를 따라하려는 것이 아니라 깊은 묵상을 토대로 자신의 정리한 설교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성장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교인의 삶이 변화되는 설교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