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그리고 열심당(젤롯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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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중간사]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그리고 열심당(젤롯인)
  • 김병국 교수
  • 승인 2023.10.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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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국 교수의 신구약 중간사 이야기 (30)
김병국 교수(백석대·신약신학)
김병국 교수(백석대·신약신학)

2) 사두개파
사두개파라는 이름은 대제사장 사독에서 왔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정책에 찬동하는 사람들이었고 당연히 요나단의 대제사장 등극에도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 제사를 둘러싼 모든 권리를 얻게 되었는데 이것은 어마어마한 특권이었습니다.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고 헌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은 그냥 가만히 성전에 있으면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일 년에 세 번씩 찾아와서 헌물을 잔뜩 바치고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사두개인들을 보호하는 왕권이 있었습니다.

3) 바리새파
‘바리새’라는 말의 어원은 ‘분리하다’입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친권력적 성격을 가졌던 사두개파와 반권력적 성격을 가졌던 엣센파의 중간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즉 적극적으로 요나단의 대제사장직 겸임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렬하게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엣센파가 쿰란이라는 척박한 곳에 가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고, 사두개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과는 달리, 바리새파들은 각자의 고향에서 조용하게 활동했습니다. 낮에는 각자의 직업에 충실했고 저녁이면 토라를 연구하고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살았습니다. 

4) 열심당(젤롯인, 셀롯인, 식카리[단도])
열심당은 주전 140년대의 요나단 사건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후 6년경에야 처음 역사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헤롯 대왕의 뒤를 이어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두메를 통치하던 아켈라오가 주후 6년에 왕위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로마 총독 코포니우스(Coponius)가 그 지역들을 직접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문제가 생깁니다. 그 전에도 유대의 왕들이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 황제에게 바치기는 했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로마인에게 세금을 바친다는 생각을 그다지 심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표면상으로는 유대인의 왕이 세금을 거두어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이 직접 세금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자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자신들의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께 대한 배신행위라고 주장하며 로마에 극렬히 저항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바로 열심당입니다. 그들은 매우 활동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열정적인’이라는 뜻의 헬라어 단어 ‘젤로스’를 사용하여 젤롯인 혹은 셀롯인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식카리’라는 것은 아람어로 ‘단도’라는 뜻인데 그들이 단도를 소지하고 다녔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백석대·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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