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영화읽기]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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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영화읽기]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최성수 박사(AETA 선교사)
  • 승인 2023.10.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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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이야기](오스 야스지로, 드라마, 15세, 1953)

오스 야스지로는 소위 ‘다다미 쇼트’로 유명한 감독이다. ‘다다미 쇼트’란 앉아 있는 자세의 눈높이에 카메라를 두고 찍는 촬영기법을 말한다. <동경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그만큼 일본인의 생활에 근접해서 가족의 모습을 조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2014년에 디지털로 복원되자 야마다 요지 감독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동경 가족>으로 표현했다. <동경이야기>와 내용적으로는 비슷하지만, 현대적인 느낌을 한층 가미하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를 한 가족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명하려는 의도가 물씬 풍긴다. 내용은 이렇다. 동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장성한 자식들이 있는 동경을 방문할 기회를 갖는다. 동경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거리가 멀어 자주 왕래할 수 없었던 자녀와 손주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물론 둘째 아들은 오사카에 살고 있고, 둘째 딸은 노부부와 함께 살면서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고 있다. 동경에 있는 가족들은 안정된 직장에서 각자 바쁜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문제는 오랜 만에 방문한 부모를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의사인 장남은 환자를 돌보는 일에 바쁘고, 첫째 딸은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틈을 내지 못한다. 유일하게 그들을 돌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오래 전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어 홀로 힘들게 살고 있는 둘째 며느리다. 노부부는 동경에서 지내는 동안 변화된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짐으로 느끼게 된다. 노부부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남편만 홀로 남게 된다. 

가족에서 흔히 일어나는 변화의 모습들을 스케치하듯 보여주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사실 정서적으로는 안타까움이 크다. 전쟁을 겪으면서 힘겹게 자식을 키웠던 부모들이 이제는 자식들에게 오히려 짐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영화가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인물은 둘째 며느리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여 자식도 없이 홀로 지내는 그녀는 시부모에게 극진한 정성을 보여준다. 그녀의 태도는 노부부가 동경에 머물렀던 시간을 불쾌하지 않고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하도록 하는 데에 기여했다. 자기들의 삶에 몰입하여 부모를 살갑게 돌보지 않는 자식들에 비해 악조건 속에서도 친부모처럼 시부모를 돌보는 그녀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오스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에서 사용된 소재가 주로 가족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대체로 그의 영화를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만 주목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동경 이야기> 안에는 일본의 역사적인 실존 상황을 은유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예컨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일궈낸 근대화는 세계정복의 야욕을 불태우게 했고, 그 결과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전쟁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함과 동시에 일본은 많은 것을 상실해야만 했다. 그후 일본의 미래는 매우 암울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두고 많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여기서 일본의 근대화가 의사인 첫째 아들로 이해될 수 있다면, 전쟁 패전국으로서 일본은 둘째 아들의 죽음으로 표현되었다. 그가 고집이 세고 자기 멋대로 살았다는 부모의 회고는 세계 야욕에 사로잡힌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감독 나름의 평가로 들린다. 그리고 전후 일본에 대한 기대감은 둘째 며느리를 통해 드러났다고 여겨진다. 그녀는 상실의 슬픔을 겪으면서 여전히 아들에 대한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가치와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유물인 시계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것이 특별히 ‘시계’라는 사실에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동경 이야기>는 일본의 전후 세대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물으며 고민했던 흔적을 담고 있다. 많은 것을 상실한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에 대한 감독 개인의 기대감을 표현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야마다 요지 감독은 2014년 <동경 가족>에서 둘째 며느리 대신에 <동경 이야기>에 나타나지 않은 자유분방한 막내아들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기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향한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두 영화를 보면서 결코 이웃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오늘 우리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성수 박사()
최성수 박사(AETA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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