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영적 권위’ 내세워 범죄… 예방과 교육 시스템 철저히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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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영적 권위’ 내세워 범죄… 예방과 교육 시스템 철저히 갖춰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10.13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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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RE) 세우는 한국교회(29) Repent, 말로만 하는 회개에서 그쳐선 안 된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다.” “나는 너의 영적 아비이기 때문에 괜찮다.” “영적 지도자와 합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거역하면 벌을 받는다.” “나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히 ‘목회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거리낌 없이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내뱉은 변명들이다. 이들은 목회자이기에 가졌던 권위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십분 활용했다. 안수기도를 해주겠다며, 따로 성경공부를 하자며 피해자들을 불러냈다. 거룩하고 경건해야 할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성범죄의 도구로 삼았다.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종종 언론에 오르내린다. 상당수는 이단·사이비가 목사의 이름을 참칭한 경우라곤 하지만 정식 교단에 소속된 목사들도 일부 발견된다. 한 매체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법원에서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개신교 성직자(목사, 전도사, 신학생, 선교사 등)의 수는 259명에 이른다. 부정적 이슈에 폐쇄적인 교회 공동체의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사건까지 감안하면 259명이란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란 평가다. 

예장 합동 제108회 정기총회가 지난 18일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개회했다. 총회는 22일까지 4박 5일 동안 진행된다.
목회자 성윤리를 강화하고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교단의 의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올해 ‘성윤리 지침서’를 채택한 예장 합동총회 전경. 

 

교회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성문제의 핵심은 목회자와 교인, 특히 나이가 어린 교인들을 상대로 갖는 권위와 위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들은 자신만이 피해자를 지도하고 훈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이는 피해자에게 자신을 ‘서방님’이나 ‘아빠’라고 부르게 했다. 칼을 들고 협박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요즘에 와서야 익숙해진, 소위 ‘가스라이팅’과 ‘그루밍’을 통해 피해자들의 마음을 주무르고 통제했다. 

‘그루밍’이란 교인들이 목회자에게만 의존하도록 하는 일종의 ‘길들이기’ 과정을 의미한다. 반복된 그루밍에 판단력을 잃은 피해자들은 제대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하나님이 주신 고통이므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들의 절반 가량(45.4%)이 18세 미만 미성년자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20대까지 포함하면 74.9%에 이른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 박신원 실장은 한 인터뷰에서 “상담을 요청하는 피해자의 90%는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그루밍 피해를 입은 이들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정서적, 신앙적으로 통솔하고 조종하는 식으로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교회에서는 성범죄 자체보다 피해 사실 공론화를 더 큰 범죄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가해자가 ‘유혹해 넘어갔다’고 주장하면 이해해주고 회개하면 된다고 하는 반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를 흔드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재발 부르는 솜방망이 처벌

SNS가 발달하면서 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한국교회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언론에서도 성직자 혹은 목사에 대한 보도에 가감이 없다. 오히려 기독교의 문제는 더 크게 부각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단들은 목회자의 잘못을 감싸는 데 급급하다. 같은 목회자로서 그들의 잘못을 실수로 받아들이고 온정을 베푼다. 이런 온정주의가 반복된 문제를 양산하게 된다는 사실을 교단도 인정해야 한다. 앞서 파악된 성범죄로 유죄를 받은 259명 중 교단에 범죄 사실이 알려진 목회자는 69명, 이 중 교단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는 26명에 불과했다. 

10대 청소년 3명을 15차례나 추행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받은 A 목사는 교단으로부터 어떤 조치도 받지 않았다. 이미 실형 판결이 나왔음에도 “여자아이가 음해를 한 것이고 A 목사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동센터에서 학생 2명을 추행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B 목사는 조사위원회에서 결백을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 아무 징계도 받지 않았다. 

이미 사회법으로 처벌을 받았으니 교단에서 치리하는 것은 이중 처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건이 알려졌음에도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치리를 미루다 결국 유야무야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구속 기소되고 실형까지 받은 목사를 위해 동료 목사들이 탄원서를 낸 사례도 있었다. 

교단의 징계가 없다면 죄질이 아무리 나쁜 성범죄자라고 할지라도 목사직이 유지된다. 문제는 이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목회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전 소속 노회나 지방회 등에서 자진 탈퇴를 한 뒤 다른 곳으로 소속을 옮겨 목회를 계속하거나, 사건을 알리지 않아 노회나 지방회가 해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달라진 인식, 하지만 먼 길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반복되면서 교단에서도 성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장 통합은 2년 전인 제105회 총회에서 ‘교회 성폭력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을 발표했다. 매뉴얼에서는 교회가 성폭력 예방과 사건 발생 시 적절한 조치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조언하고 우선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또 노회가 격년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면서 목회자들에게 성윤리 지침 서약서를 받아 보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와 함께 피해자들의 대처 방법과 사건 처리 방법, 주변의 성도들이 지켜야 할 사항, 목회자 개인이 지켜야 할 사항도 명시하고 있다. 

예장 합동은 올해 정기총회에서 교회 내 성폭력에 대한 윤리 강령과 대응 지침을 제정했다. 합동 대사회문제대응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에는 성폭력 피해 시 대처 방법, 성폭력에 대한 편견 해소,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및 성인지 감수성의 중요성, 그루밍 성범죄 설명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성 윤리 지침 서약서’를 공개해 격년으로 의무교육을 받고 서약서도 작성할 수 있게 했다. 

기장은 올해 총회에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해 교역자들에게 성범죄 및 아동 학대 범죄 경력 조회 동의서를 의무 제출하도록 결의했다. 앞으로는 목사 후보생이나 수련생이 될 때, 목사 고시 응시 및 목사 청빙 대상자가 될 때 해당 범죄 경력 조회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밖에 특별위원회인 성폭력대책위를 존속하도록 하고 성폭력 관련 재판에서 피해자를 대신해 대리인 1명을 교단 내 목사·장로 중 선임할 수 있게 했으며, 피해자들은 공탁금 및 소송 비용을 내지 않아도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다.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사회의 성범죄 관련 인식과 대책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예장 통합 정치부와 고시위원회는 ‘목사 고시 응시자 및 목사 임직자의 성범죄 경력 조회 및 범죄 경력 회보서 제출 법제화’를 올해 정기총회에 청원했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합동은 성범죄 대응 지침을 결의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제로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또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며 일괄적으로 ‘성윤리’라는 단어로 대치하면서 성폭력이 아닌 성윤리를 예방한다는 ‘교회 성윤리 예방 및 대응 지침서’라는 해괴한 이름의 지침이 탄생하는가 하면, ‘성폭력처벌법’을 ‘성윤리처벌법’으로 명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든 것을 은혜’로 ‘회개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지난 2021년 개신교인 800명, 목회자 2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교회 성인식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한 목회자의 수는 97%에 달했다. ‘목사가 교인 대상 성범죄 시 영구제명해야 한다’는 교인들은 87%에 육박했다. 이제는 인식에 시스템이 뒤따라갈 때다. 

중요한 것은 목사도 사람이고, 누구나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한 사람의 범죄가 전체 목회자로 일반화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범죄 행위가 한국교회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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