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영화 읽기]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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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영화 읽기]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존 방식
  • 최성수 박사(AETA 선교사)
  • 승인 2023.09.2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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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북(피터 패럴리 감독, 드라마, 2019, 12세)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은 2018년 제43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부유한 흑인 음악가와 가난한 이탈리아 사람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북>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와 이탈리아계 이민자 토니다.

셜리 박사는 백악관에 초청되어 연주할 정도로 또 인종차별의 도가니인 미국 남부인들이 기꺼이 그를 만나고 싶어 할 정도로 연주 기량이 압도적이다. 기사로 고용된 토니는 그의 미국 남부 순회 연주 여행을 함께 한다. 그린북은 남부 지역을 여행하는 흑인에게는 일종의 지도와 같다.

그린북에 기재된 숙소나 음식점이 아닌 곳에서 흑인은 머물지도 또 먹지도 못한다. 심지어 화장실 이용도 제한되어 있다. 흑인이 그린북 밖의 세상에서 나온다는 건 궤도에서 벗어난 기차다. 고통을 각오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백인들에게 둘러싸여 조리돌림을 당할 수도 한다.

사실 1960년대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다뤄진 소재다. 그런데도 미국의 평론가들이 인종차별을 다룬 <그린북>에 주목했던 이유는 인종차별의 실상을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그런 현실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곧 피아니스트의 재능은 존중하면서도 정작 피아니스트의 사람됨은 존중하지 못하는 백인의 이중성을 폭로한다. 이중성으로 인해 자가당착에 빠지는 백인을 다루었다. 백인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이다.

부조리한 이중성의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셜리 박사의 입을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표현된다. 백인의 문화적 자부심을 충족시켜주는 연주 기계에 불과하고, 같은 흑인에게는 다른 부류의 특별한 존재로 여겨져 따돌림을 당하고, 그리고 성 정체성을 맘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자로 취급되는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무대 안팎이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야 했다. 이런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그가 선택한 길은 누구에게나 고귀한 인간으로 인정받을 만한 품격 있는 삶이었다.

만일 뛰어난 재능으로도 또 높은 품격의 태도로도 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통해 흑인의 인간다움은 존중받을 수 있는 걸까? 셜리 박사는 타자를 이해하는 데 용기가 필요함을 확인하고 싶었다. 곧 자기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확인하려 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을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그는 인종차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남부 지역 순회 연주 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니까 셜리 박사의 연주 여행은 인간의 품격 있는 삶이 인종차별의 현실에서도 받아들여질 것인지를 시험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8주간의 여정에서 토니는 셜리 박사가 겪는 극심한 인종차별의 현실을 함께 경험하게 되고, 또 그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와 그의 삶을 공감한다. 무엇보다 품격 있는 삶이 그에게 생존을 위한 방식이었음을 이해한다. 셜리 박사 역시 토니의 교양 없는 언행이 이민자로서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공감, 이것은 두 사람이 여행 후에도 계속된 우정을 설명한다. 특히 마지막 연주를 위한 자리에서 인종차별에 맞서 자기 생존 방식인 품격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흑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영화의 백미다. 비로소 그는 자기가 어디에 속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그동안 자기를 포장했던 품격있는 삶의 외투를 벗어 던졌을 때 비로소 그는 품격 있는 삶으로는 결코 얻지 못한 마음의 평화와 자유 그리고 참 기쁨을 누린다. 이는 토니에게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타자와 함께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자기 생존 방식만을 고집하지 말고, 비록 삶의 방식이 서로 달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인다면, 마음의 평화는 선물처럼 찾아오지 않을지 싶다. 영화는 바로 이런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최성수 박사(문화 칼럼니스트)
최성수 박사(문화 칼럼니스트, AETA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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