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謝過)는 화목을 여는 큰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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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謝過)는 화목을 여는 큰 열쇠
  • 이의용 교수(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 승인 2023.09.2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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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55)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가끔 일본과 중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호감도 조사 결과가 보도된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호감도라기보다는 혐오도 조사 같다. 두 나라 모두 우리와 지리적으로 제일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과거에 우리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 대한 그쪽 국민들의 호감도 역시 다르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노롯이다. 

새 정부가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무리할 정도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가해국의 과거사 인정, 사과, 보상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베트남 참전시 우리가 그들에게 준 아픔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일이 거의 없는 우리가 어쩌다 남의 전쟁에 끼어들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과라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덮어주는 건 용서다. 하나님께는 회개와 용서로 표현한다. 회개와 용서, 사과와 용서는 쌍방적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사과, 일방적인 용서는 효과가 없다. 하나님도 회개를 전제로 용서하신다. 사과는 용서 청구서다. 신기하게도 용서를 청구하면 대개 쉽게 이뤄진다. 그래서 둘 사이를 막고 있는 벽을 허물고, 관계를 회복시켜 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그렇다. 

사과는 최고의 소통 기술이다. 그런데 기술은 익혀야 빛이 난다. 평소 연습이 안 된 사람은 많은 불편을 겪는다. 누구나 신혼 초에는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럴 때 사과 연습이 잘 된 부부는 쉽게 화해를 하고 넘어가는데, 연습이 안 된 부부는 고생을 하는 걸 자주 본다. 내 경우도 그랬다. 아들만 여섯인 집 막내인 나는 아내에게 “내가 잘못했다”는 표현을 말로 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니 언짢은 일이 생기면 몇 일 동안이나 혼자 쓸 데 없는 마음 고생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잠자리에서 내 엄지 발가락으로 아내의 발바닥을 간지르는 것이다. 그게 “잘못했다”는 나의 표현이니 그리 알아달라고 했다. 많이 미안하면 세게 긁어주었다. 물론 지금은 연습을 많이 해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하자. 피해자는 대개 가해자가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린다. 가해자가 사과를 하면 받아주려고. 그런데 가해자는 그것도 모르고 너무 미안해서, 혹은 받아주지 않을까봐 사과를 미룬다. 그러다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화(火)의 마일리지는 쌓여만 간다.

우리는 ‘사과’ 하면 혼나는 걸 먼저 연상한다. 우리의 부모, 교사가 꾸중을 제대로 못해서다.  꾸중은 행동을 바꾸기 위한 소통 방법인데, 화풀이 수단으로 써온 경향이 있다. 그러니 사과하기를 꺼리게 된 면도 없지 않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 경우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미안함을 표현함으로써 먼저 상대방의 화를 가라앉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과는 소통의 한 방법이다. 꾸중하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일은 법정에서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소통 활동이다.

사과는 소화기 - 불이 번지기 전에
속히 꺼줘야 한다

사과는 상대방의 마음에서 일고 있는 불을 꺼주는 소화기다. 불길이 번지기 전에 가급적 빨리 불을 꺼줘야 한다. 상대방에게 폐를 끼쳤다면, 손해를 끼쳤다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면 그에 대한 나의 공감을 표현해서 상대방 마음에서 일기 시작한 불을 꺼줘야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주는 게 마땅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짐이 내 마음에 남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에 분노를 남기게 된다. 그래서 서로 피하게 되고 경계하게 되고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분노가 쌓여 언젠가 보복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반면에 사과를 하면 가해자는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피해자도 정서적인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가해자를 더 이상 위협으로 느끼지 않게 되면, 용서로 반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 사과는 상대방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또 과거에 대한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일이다. 사과는 화목을 여는 큰 열쇠다. 

“그러므로 네가 만약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네 형제가 너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 생각나면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두고 우선 가서 그 사람과 화해하여라. 예물은 그다음에 돌아와 드려라” (마 5:23~24, 우리말성경)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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