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질은 선교… 모든 교회가 ‘선교적 교회’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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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은 선교… 모든 교회가 ‘선교적 교회’ 돼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9.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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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RE) 세우는 한국교회(27) Redemption, 존재의 이유가 ‘선교’인 교회

이를테면 수학여행과 같은 것이었다. 교회를 학교에 빗대자면 선교는 그렇게 느껴졌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학기 중 교과 활동이라면, 선교는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처럼 1년에 한 번 있을 법한 특별활동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선교를 성도의 의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기도 중에 ‘아프리카로 가라’는 음성을 듣는 뜨거운 영성의 소유자들에게 주어진 특수 임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적 교회’로 부름 받았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다.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명령, 지상 대위임령을 받아든 제자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모였고 이들의 모임이 곧 교회라 불렸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선교적 교회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저 사회활동에 가담하는 교회, 혹은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교회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교회가 신뢰를 잃고 다음세대가 떠나는 위기의 시대에 대안으로 제시되는 선교적 교회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선교적 교회는 카페나 도서관을 운영하거나 이웃을 돕는 ‘형태’가 아니라, 복음 전파라는 본질로 돌아가려는 정체성 회복 운동으로 이해돼야 한다.
선교적 교회는 카페나 도서관을 운영하거나 이웃을 돕는 ‘형태’가 아니라, 복음 전파라는 본질로 돌아가려는 정체성 회복 운동으로 이해돼야 한다.

 

복음을 위해 흩어지는 교회

공부하는 학교, 운동하는 스포츠 구단, 노래하는 가수…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과 스포츠 구단에서 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가수란 곧 노래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일 테다. 말하자면 동어반복인 셈이다.

선교적 교회 역시 사실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지상명령에서 보듯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하는 공동체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수행하지 않았기에 선교적 교회라는 동어반복이 어색하지 않게 들리게 됐다. 선교적 교회론의 등장은 당연한 의무에 소홀했던 교회에 대한 슬픈 자화상이다.

선교사이자 신학자였던 레슬리 뉴비긴은 “교회와 선교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가 교회의 본질”이라며 “선교를 위해 교회가 일치되고 연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교적 교회에서 말하는 선교란 단순히 교회로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한두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의 선교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기존의 전도가 울타리 안으로 끌어모으는 것에 집중했다면 선교적 교회는 복음을 들고 울타리 밖으로 흩어지는 것에 힘을 쏟는다. 즉,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의 전환이 선교적 교회의 시작이다.

선교적 교회가 되려면 선교에 대한 개념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이역만리 외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라고 여겼다면 이제는 다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복음의 가치를 실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곁에 있는 이주민과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선교적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는 선교적 교회는 이벤트가 아닌 성도의 삶과 연관되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선교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갇히면서 선교적 교회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가 생겼다”며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거나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선교적 교회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목회의 어젠다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양식보다는 본질에 초점을

선교적 교회론의 선구자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는 선교적 교회의 핵심 요소를 세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는 ‘성육신적 교회론’이다. 선교적 교회의 원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성육신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교적 교회는 세상의 눈높이를 함께하는 낮아진 교회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는 ‘메시아적 영성’이다. 이는 교회의 존재와 모든 활동은 구속적 사역이어야 함을 뜻한다. 단순히 구원의 메시지를 입으로 말하는 기관이 아니라 존재 양식이 구속적이며 세상의 소망이 돼야 한다. 셋째는 ‘사도적 리더십’이다. 선교적 교회의 리더십은 계급적, 관료적인 세상의 구조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선교적 교회론이 처음 제시된 이후 한국교회에서도 다양한 선교적 교회의 유형들이 시도됐다. 누군가는 이웃을 돕는 형태로, 또 누군가는 전통적 선교에 좀 더 치중하는 형태로 각자의 자리에서 선교적 교회를 만들어 보려 애썼다. 조샘 선교사(인터서브 대표)는 한국에서 시도된 선교적 교회의 유형들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는 ‘지역사회 섬김형’이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의 필요를 채우려 애쓰는 활동을 말한다. 카페나 도서관, 지역아동센터 등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예시들이다.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선교적 교회는 대부분 이런 형태를 가리킬 때가 많다.

둘째로는 ‘분립과 개척형’이다. 지금의 교회에서 섬기지 못하는 문화 그룹을 섬기기 위해 교회를 분립해나가는 방향이다. 셋째는 ‘다문화·다민족 교회’로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을 섬기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다민족이 하나로 모이는 형태도 있고 특정 민족만을 모아 특화된 사역을 펼치는 곳도 있다.

넷째로는 ‘해외선교형’이다. 한국교회가 지금껏 해왔던 전통적 방식의 선교, 즉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사역에 힘을 주는 교회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성도파송형’을 들 수 있다.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조직을 최소화하는 대신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 삶을 살도록 격려한다. 조직적으로 큰 프로젝트를 하기보다는 실천적 소그룹을 형성하고 비기독교인들과도 이어지는 생태계를 만든다.

조샘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선교적 교회 운동에 대해 “교회가 교회 자체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하고 세상과 연결하려고 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성도들을 안으로 모으고 내적인 프로그램에 집중했던 교회 성장론의 흐름에서 벗어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 하고 교회 밖으로 향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과거 그룹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집단적 환대가 아니라 일대일 관계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진정성 있는 환대, 긴 호흡의 동행이 선교적 교회의 코드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교회에서 이뤄진 선교적 교회 운동이 교회의 본질 회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교회 성장론의 도구로 이용돼왔다는 지적도 있다. 이다니엘 목사(IBA 사무총장)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선교적 교회 담론이 유행하며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20여 년이 지나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지 돌아보면 의문이 남는다”면서 “우리의 체질이 ‘선교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20세기 후반 ‘교회 성장론’의 DNA는 유지한 채 껍데기만 선교적 교회를 외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한다”고 꼬집었다.

집중해야 할 것은 선교적 교회론에 담긴 본질이다. 이 목사는 “결국 중요한 것은 시류와 유행, 방법론이나 전략이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건강하고 폭넓은 관점”이라면서 “복음이라는 확고한 가치 속에 세상의 흐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지혜롭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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