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마을 목회’는 전도 수단 아닌 교회의 당연한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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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마을 목회’는 전도 수단 아닌 교회의 당연한 정체성”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8.31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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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RE) 세우는 한국교회(26) Research, 마을을 알면 목회가 보인다

“배타적이다. 물질에 집착한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다. 세속적이다.” 상대가 누구이기에 이토록 날을 세워 혹독한 비판을 쏟아내는 걸까. 웬만큼 원수진 사이가 아니라면 예의상이라도 칭찬 하나쯤은 껴주기 마련인데, 분노마저 느껴지는 냉랭한 평가에는 조금의 온기도 개입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온갖 좋지 않은 말은 다 모아놓은 듯한 부정적인 묘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국교회다. 국민일보와 사귐과섬김 부설 코디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개신교를 상징하는 단어’를 묻자 국민들은 이렇게 답했다. 다른 종교인 가톨릭이 ‘도덕적, 헌신적, 희생적’, 불교는 ‘포용, 상생, 보수적’이라는 답변을 받았음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쓰라리다. 같은 조사에서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25.3%로 천주교(65.4%)와 불교(66.3%)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오늘날 기독교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잔인한 성적표다.

하지만 기상도가 흐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뢰도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역시 목사님은 다르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현장이 있다. 그곳은 말씀이 현실이 되는 현장이다. 이웃의 고통을 분담하고 약자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며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눈다. 지역사회의 현안에 앞장서 반응하고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실현하는 교회의 모습에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을 거둔다. 우리는 이 현장을 ‘마을 목회’라 부른다.

 

마을 목회는 지역사회와의 호흡

교회가 마을에 적을 두고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회가 마을 안에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마을 목회를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교회연구소(소장:정재영 교수)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마을 목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한 교회의 비율은 52.7%로 나타났다. 한국교회 중 약 절반 가량은 마을 목회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절반. 많다고 하기도, 적다고 하기도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수치다. 이를 판단하려면 21세기교회연구소가 마을 목회를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소는 마을 목회의 유형을 △복지서비스형(빈곤층 돕기, 무료급식, 지역아동센터 등) △공간활용형(교회 공간 제공, 카페·도서관 운영) △생활문화형(공연 및 전시, 상담센터 등) △지역참여형(지역사회 행사 기획 및 운영, 마을공동체 참여) △지역경제형(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등 5가지로 구분했다. 사실상 교회가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대부분의 활동이 마을 목회로 분류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53%라는 수치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21세기교회연구소가 마을 목회의 예시로 제시한 사역은 무려 20가지. 여기에는 거창한 활동뿐 아니라 이웃과 식사를 나누고 교회 장소를 지역사회를 위해 제공하는 단순한 활동도 포함된다. 반대로 말하면 무려 47%나 되는 교회가 20가지의 활동 중 어떤 것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참여하고 있는 마을 목회의 유형에는 ‘복지서비스형’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조사를 발표한 실천신대 정재영 교수는 “복지서비스형이 가장 많았고 공간활용형과 지역참여형이 뒤를 이었다. 특히 독거노인과 빈곤층을 돕는 활동이 활발했다. 교회 규모가 클수록 재정과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형이, 규모가 작을수록 지역경제형이 비중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마을 목회라는 개념이 제시된 것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마을 목회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길다. 마을목회신학포럼 상임대표 오필승 목사는 “마을 목회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한국교회는 마을 목회를 해왔다. 마을을 바탕으로 이웃과 함께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이 바로 마을 목회”라면서 “‘마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작은 교회가 마을에서 하는 목회를 마을 목회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마을 목회는 큰 교회나 작은 교회 가릴 것 없이 어디서든 할 수 있고, 또 어디서든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정적 시선 돌린 마을 목회

모든 교회가 마을 목회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을 목회가 눈에 보이는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교회연구소의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마을 목회가 교회의 이미지 개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마을 목회에 참여하고 있는 목회자 중 79.2%는 ‘마을에서 진정성을 인정받아 목회자는 다르다고 인정하거나 칭찬을 해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마을 주민이 처음에는 마을 목회에 무관심하거나 비협조적이었으나 나중에는 이해해 주고 적극 협력해준 경우’도 65.5%나 됐다. 지역사회를 섬기려는 진정성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돌려놓은 것이다.

이제 마을 목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실천신대 조성돈 교수는 “예전에는 십자가만 꽂으면 사람이 모였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나 기독교라는 이름만 들어도 부정적인 반응이 튀어나온다”면서 “이런 시대에 마을 목회는 거의 유일한 돌파구라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돈을 들여 건물을 짓고 행사를 여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을 목회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전문가들은 먼저 지역 공동체가 어떤 일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마을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역으로서 마을 목회’에 집중한다면 귀중한 재정과 인력만 낭비되고 실효는 거두지 못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을 목회에 적극 참여하는 검단참좋은교회 유승범 목사는 “마을에서 필요로 하면서도 교회 공동체가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역을 해야 한다. 교회는 뭘 하든 경쟁적으로 성과를 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다른 교회나 기관과 중복되지 않고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검단참좋은교회 역시 지역의 필요에서 답을 찾았다. 교회가 위치한 동네의 가장 큰 이슈거리는 쓰레기 문제였다. 이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 검단 지역에 제로웨이스트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방향을 정한 교회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교회 공간 일부를 리뉴얼해 제로웨이스트샵을 오픈했고 현재 2년째 운영 중이다. 단순히 가게를 여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쓰레기 문제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 목회는 재정과 인력이 넉넉한 큰 교회만 할 수 있는 사역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유승범 목사는 “작은 교회이기에 오히려 더 창의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여건이 어렵다면 지역교회 연합체와 함께 운동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교회를 개척하고 우리 동네에 교회가 생겨서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제로웨이스트샵을 연 이후 주민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정말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마을 목회를 전도 수단이나 교회 성장의 도구로 여기는 함정은 조심해야 한다. 오필승 목사는 “마을 목회를 하나의 전도 전략으로 생각하기보다 지역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주민들이 진정성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열려 전도가 되는 것”이라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가르쳐주시며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섬김은 전도의 수단이 아닌 교회의 사명이자 삶의 양식이 돼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진정성 있는 마을 목회로 신뢰를 회복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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