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거절의 은혜
상태바
[기자수첩] 거절의 은혜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3.08.28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교회 그룹 채팅방에 짤막한 기도 요청 메시지와 함께 요즘 보기 드문(?)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평소 노방전도에 진심이던 A 성도가 이제 막 4, 3살 된 아들 둘을 유모차에 태우고 복음 전파를 위해 거리로 나선 인증샷이었다.

무더운 날씨, 연년생 아들 셋을 육아하며 지칠대로 지쳤을 체력. 여기에 토요일 오전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을 반납하고 어린 아들들과 함께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지를 손에 쥐고 길을 나선 A 성도에게 새삼 존경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현장 목회자 및 사역자들은 갈수록 전도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크리스천들 가운데서도 특히 노방전도는 점점 자취를 감추는 모양새다. 정성스레 준비한 간식이 무색하게도 행인들이 전도지를 뿌리치거나 무시하는 일은 다반사기 때문.

여기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진, 소위 묻지마 범죄는 각박한 세상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 같아 씁쓸함을 안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칼부림을 벌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살인 예고 글이 번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불신과 불안이 급격히 고조되는 양상이다. 오죽하면 길 가다가 낯선 행인과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사람들이 전도의 손길을 거절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개인주의를 비롯해 기독교의 신뢰도 하락 등 근본적 원인들 말이다. 다만 흉흉한 사회 분위기에 타인에 대한 경계가 고조됨은 분명 전도 현장에도 좋지 않은 타격을 입히는 듯하다. 오늘날 전도의 위축이 필연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지난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복음이 큰 환영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복음에 대한 핍박과 거부는 늘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임을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래 전 취재차 만났던 한 청년 사역자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당시 그는 오늘날 진짜 문제는 전도를 하지 않는 데 있다전도의 실패는 오직 전도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A 성도의 노방 전도 소식이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까닭은 아마도 요즘 같은 때 전도에 뛰어드는 용기와 열정이 부러웠던 게 아닐까아울러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된 삶이 오늘날 진정한 전도라고 합리화하며, 직접 말로 전하는 복음에는 소홀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지금 내게는 길 위에서 복음을 거절 당하는 은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