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철옹성 같은 벽 앞에 선 그리스도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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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철옹성 같은 벽 앞에 선 그리스도인의 자세
  • 임석순 목사
  • 승인 2023.08.2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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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순 목사
임석순 목사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가지게 된 자신의 견해를 잘 바꾸지 않습니다. 그것을 바꾸기에 충분한 타당한 이론이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는 견해 차이로 인하여 큰 벽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는 교회에서까지도 벽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리는 주님의 방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이 유대인들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오히려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반석이 되고 모퉁이 돌이 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모퉁이 돌 위에 서는 사람은 생명의 사람으로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함정에 넣어 죽일 방법만을 강구했습니다. 이것이 절대로 바뀌지 않고, 돌아서지 못하고 여전히 주님을 죽이려고만 하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당신의 뜻을 결코 바꾸지 않으십니다.

전혀 바뀌지 않는 죄인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달랐습니다. 세상은 힘으로 제압하고 힘으로 올라서고 죽여 사람을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방식과는 달리 저들을 사랑하여 내가 죽는 방식으로 세상을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 사랑은 바로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죽을 줄 알면서도 그 뜻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님을,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믿으셨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허락되었습니다. ‘내가 죽어야 생명을 낳는다.’ 이것이 주님의 방식이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따라가기 힘들어도 나를 건져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믿음을 가지고 기꺼이 내가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싸움을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반드시 생명의 역사를 낳게 할 것이며 더 좋게 하실 것이고 합력하여 선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자만이 죽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철옹성 같습니다. 인간관계도 철옹성과 같이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라도 여야의 모습은 서로가 벽을 느끼게 합니다. 교단의 싸움도 같은 주를 섬기는데도 대화를 할 수 없을 만큼 벽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때 하나가 되고 연합을 하는 것은 어느 쪽인가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걸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 것을 아신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심을 절대로 꺾을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변할 수도 없고 그분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으시고 언제나 사랑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생명의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내가 부딪혀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처럼 살 때 변화됩니다. 내가 죽을 때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감으로 온 땅에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세상을 꿈을 꾸어봅니다.

한국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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