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휠체어 탄 장로님, 시각 장애인 권사님을 보신 적 있나요”
상태바
[연중기획] “휠체어 탄 장로님, 시각 장애인 권사님을 보신 적 있나요”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8.07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RE) 세우는 한국교회 (23) – Remove,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물다

시험 하나 치르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선비들에게 있어 최고의 영광인 과거 급제를 위해서라면 며칠은 고사하고 몇 주, 몇 달이 걸려서라도 시험이 열리는 한양으로 향했다. 험준한 산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호환을 만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이면 한반도 어디서든 서울땅을 밟을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저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비행기가 훨훨 날고 도로 위 수백만 대의 차들이 질주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예배에 참석하려는 장애인들에게는 문 앞의 작은 턱이 낙동강이고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이 문경새재나 다름없다. 그나마 과거 시험은 3년에 한 번만 여로에 오르면 족했지만, 예배를 드리려는 장애인들은 매주 주일마다 멀고도 험한 여정을 각오해야만 한다.

교회(敎會). 모든 믿는 자들이 모이는 차별 없는 공동체라 정의하지만 실제로도 그러할까. 장애인과 약자를 향해 보이지 않는 벽을 두른 채 교회 안에서만 즐거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다시 세우기’는 ‘허무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은연중에 만들어 놓았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

교회에 가는 길도, 교회 안에서도 장애인들이 느끼는 벽은 여전하다. 장애인에게 열린 교회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교회에 가는 길도, 교회 안에서도 장애인들이 느끼는 벽은 여전하다. 장애인에게 열린 교회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장애인 향한 보이지 않는 벽

교회로 가는 길부터가 산 넘어 산이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척수장애인 김미란 씨는 “교회에 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가끔은 빠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털어놨다. 재정과 인력이 넉넉한 대형교회 중엔 장애인을 위한 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지만 극히 일부. 저상버스가 아닌 버스에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버스 운영조차 힘든 작은 교회라면 선택지마저 사라진다.

김 씨처럼 작은 교회에 출석하는 휠체어 장애인들은 예배에 가려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휴일인 일요일에는 운행하는 장애인 콜택시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 게다가 주일 11시 즈음엔 교회에 가려는 크리스천 장애인들의 수요가 겹쳐 콜택시를 잡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김 씨는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교회가 있지만 적어도 예배 시작 한 시간 전에는 나가야 예배 시간에 맞출 수 있다. 예배가 끝나고도 혼자 쓸쓸히 남아 콜택시를 기다려야 한다”며 “교회에서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콜택시 예약 전쟁을 피하려면 남아있는 선택지는 대중교통이라는 우회로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나 험난하기는 마찬가지. 어떤 교회인지 알아보려면 직접 가봐야 할 텐데 첫 번째 전제 조건부터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이동 수단이라는 1차 면접에서 벌써 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교회의 범위는 대폭 좁아진다.

교회에 도착했다고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꼬마 아이들에게도 별것 아닌 조그만 턱도 장애인들에게는 버겁고,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다 치면 예배당까지 가기도 어렵다. 요즘 새로 지어진 교회들은 비교적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갖춘 편이지만 장애인 화장실까지 구비하고 있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교회 안에는 장애인들만 느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벽들로 가득하다.

장애인들을 가로막는 벽을 부수는 일은 비단 장애인들만을 위한 작업은 아니다. 한국밀알선교단 단장 조병성 목사는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는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모님들이나 보행 보조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장애인 규격에 맞춰 교회를 건축하면 장애인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전 성도가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되는 것”이라면서 “누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접지를 수도, 경미한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있다. 꼭 장애인을 위해 시설을 만든다는 생각보다 모든 성도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길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휠체어 탄 장로님 보신 적 있나요

벽은 예배 안에도 있다. 믿는 자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이 예배임에도 교회 안에는 일반 예배와 장애인 예배가 구별된다. 일반 예배에서 ‘장애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 예배’가 따로 존재하는 순간 일반 예배가 아닌 장애인 예배로 가야 한다는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선은 예배에 함께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제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도 휠체어 좌석을 찾아볼 수 있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다. 그럴 경우엔 하는 수 없이 예배당 맨 뒤 구석 자리로 내몰린다. 드물게 휠체어 좌석이 있는 교회를 찾는다 해도 맨 앞이나 맨 뒤에 위치해 선택권이 없다. 뇌병변이나 척수장애 등 장애의 종류에 따라 맨 앞자리에 앉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청각장애인 성도들의 경우 아무리 좋은 설교가 많아도 그림의 떡이다. 볼륨을 끈 채 드라마를 볼 수 없듯 수화로 통역이 되지 않는 설교는 이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못한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많은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를 시작했지만 영상에서 수화 통역까지 제공한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통합예배’가 언제나 정답이냐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다소 애매하게 들릴 수 있지만 통합예배와 장애인 예배는 상황마다 일장일단이 있다. 특히 일반 성도들과 소통이 어렵고 인프라 유무와 관련 없이 설교를 이해하기 힘든 지적장애인이라면 그들의 눈높이와 환경에 맞춘 예배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장애의 정도와 개인의 특성에 따라 통합이 유익할 수도, 혹은 교회 장애인 부서나 특수학교가 유익할 수도 있다며 ‘통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꼭 지적장애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장애인 부서를 통해 장애를 가진 성도들이 동질감을 갖고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몸이 불편할 뿐 소통이 가능한 장애인 성도라면 일반 예배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장애인 사역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휠체어 좌석이나 수화 통역과 같은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얼마든지 장애인도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장애인 교회나 부서로 선택지가 좁혀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교회에선 장애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치유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잦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밀알선교단 이석희 간사는 “휠체어를 타고 예배에 참석했더니 성도 한 분이 다가오셔서 다짜고짜 제 머리에 손을 얹고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라고 기도했다. 교역자들이 당황해 말릴 때까지 계속하셨다”며 당혹스런 경험을 털어놨다.

필요한 것은 장애인 성도도 여느 성도와 다르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로 보는 시선이다. 비장애인 성도라 할지라도 성장 배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며 각자가 가진 조건이 천차만별이듯, 장애 역시 그런 특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조병성 목사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로님을 보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국민의 10% 가량이 장애인이라면 장로 10명 중 1명 정도는 장애인이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각장애인 교회나 청각장애인 교회, 장애인들이 많이 모인 교회가 따로 있다는 것이 기존 교회가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인 것 같다. 연합과 일치를 외치는 교회가 장애인을 분리하고 있는 것은 슬픈 현실”이라며 “언젠가는 한국교회에서 휠체어를 탄 장로님도, 시각 장애인 권사님도 흔히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