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45주년 나의사랑, 나의백석] “백석의 이름으로 응집력 높이는 총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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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45주년 나의사랑, 나의백석] “백석의 이름으로 응집력 높이는 총회 되길”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7.28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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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증경총회장 홍태희 목사 / 평택은실교회 원로

1981년 은혜-연합 통합 후 백석과 한 가족 돼 성장
5회기 동안 총무 역임하며 총회 기반 닦기에 헌신
하나님 영광위해 다 내려놓은 장종현 목사 공로 커


“돌이켜 보면 이렇게 학교와 총회가 부흥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요, 은혜입니다. 여러 번의 교단 통합과 명칭 변경을 거쳐 지금의 백석총회가 되었고, 방배동에서 이루어진 총회의 역사와 함께한 섬김의 사역은 제 인생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홍태희 목사가 총회장에 추대되던 해에 장로부총회장 제도가 처음 신설됐다. 왼쪽은 1대 장로부총회장 이석헌 장로, 가운데 홍태희 총회장, 오른쪽이 부총회장 양병희 목사다.
홍태희 목사가 총회장에 추대되던 해에 장로부총회장 제도가 처음 신설됐다. 왼쪽은 1대 장로부총회장 이석헌 장로, 가운데 홍태희 총회장, 오른쪽이 부총회장 양병희 목사다.

지난 2005년 제28회기 총회장으로 추대된 홍태희 목사(평택은실교회 원로). 예장 은혜측 소속으로 1981년 연합측과 통합을 한 직후 지금의 백석총회 전신인 합동진리총회와 다시 합치게 되면서 교단 초창기부터 총회 임원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왔다. 홍 목사는 “총회 재정이 부족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아껴가며 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홍태희 목사가 속했던 예장 은혜측은 원래 ‘대한예수교오순절교회’였다. 1958년 미국인 레오날드 쿠드 선교사가 극동사도선교회를 기반으로 지금의 대전 가양제일교회 자리에 중도성서신학교를 세웠고 오순절 신앙의 성령운동을 강조하며 목회자를 양성했다. 하지만 ‘오순절’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당시 분위기로 인해 복음전파에 어려움을 겪자 교단 이름을 대한예수교장로회(은혜)로 변경한 것이다. 

은혜측이 연합측과 통합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인가신학교 정비령 때문이다. 1980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교회 수 300개가 넘는 교단에만 1개의 신학교를 허가했다. 홍 목사는 대전에서 노방전도를 하다가 만나게 된 이영 목사와의 인연으로 통합을 제안했다. 

“서울로 와서 연합총회를 찾아갔더니 이영, 이종정, 계정남, 홍찬환, 이승일 목사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오랜 논의 끝에 두 교단이 조건 없이 합치되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두 교단은 통합에 합의하고 1981년 1월 20일 교단통합예배를 드렸다. 당시 연합측 총회장은 이승일 목사, 은혜측 총회장은 고창훈 목사였다. 그리고 다시 연합측과 합동진리총회가 통합했다. 1년 후인 1982년 교단 명칭은 예장 합동정통으로 바뀌었다. 홍 목사는 6~7회기, 10~12회기 총무로 일했다. 평택에서 서울까지 대중교통을 서너번 갈아타며 2시간씩 오가며 총회 일을 했다. 

홍태희 목사가 부총회장에 선출되던 해, 백석에서는 처음으로 장로부총회장 제도가 생겼다. 경안노회 소속 이석헌 장로가 장로부총회장에 추대되어 함께 일을 했고 내실 있는 총회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홍 목사는 “임기 중에 헌법의 기초를 닦아 놓고 법체계를 마련한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 총회가 빚 없이 자립하는 일에 힘써왔고 목회자 연금제도 시행도 목표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홍 목사는 평택은실교회 성도들과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자립을 이룬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총회 목회자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자본금 7만원으로 시작한 평택은실신협은 현재 조합원이 1만 명에 이르는 경기인천지역의 우수 조합이자, 1700억대의 자산을 보유한 든든한 조합으로 성장했다. 

홍 목사는 “총회 설립 45주년을 맞아 연금제도를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목회자 연금제도는 총회장 임기 중에 꼭 하고 싶었던 사업인데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다만 지금이라도 신협을 성장시킨 노하우를 총회에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총회관 건립, 45주년 기념사업, 목회자 연금제도 시행. 이와 같은 백석총회 숙원 사업을 총회장 장종현 목사가 이루어내고 있는 것은 “장종현 총회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홍 목사는 힘주어 말했다. 학교와 총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 장종현 목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없는 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청했을 때 장종현 목사는 본인이 두 명을 다 책임지겠다며 장학금을 지원하여 백석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켜주었다.

또 “장종현 목사는 한번 모신 어른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잘 모시는 분”이라며 “마지막까지 명예롭게 섬겨주시는 모습은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학교 설립 초기에 어떤 교수님이 돌아가시자 장종현 설립자가 사비를 털어 장례를 치르고 그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보내드린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홍 목사는 자신도 큰 은혜를 입었다고 했다. 지난 2008년 명예행정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 학교에서 후학들에게 목회와 정치, 헌법을 가르칠 기회를 얻은 것도 설립자 장종현 목사의 배려라며 잊을 수 없는 감사라고 전했다. 총회의 중요한 일에는 늘 정확한 의견을 내며 후배들을 바른길로 이끌어 온 홍태희 목사. 1만 교회를 앞둔 총회에 내실을 기해달라는 당부도 남겼다. 

“1만 교회가 되면 더 이상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소속감을 높이고 백석의 이름으로 응집력을 갖길 바랍니다.” 대신총회와 통합 후 ‘백석’의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홍태희 목사. 일단 ‘백석 안에 들어왔으면 소외되는 교회가 없도록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일생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따르지 않았고 법이 정한 정도로만 걸어왔습니다. 목회도 총회 일도 모두 최선을 다해 헌신했습니다. 인생 3막을 잘 마무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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