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삶까지 변화되는 기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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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삶까지 변화되는 기적을 꿈꿉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3.07.24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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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과 삶: 밀알심장재단 회장 이정재 목사

인생 죽을 고비 넘긴 뒤 ‘심장병 환자’ 위해 살기로 결단
무료 수술 및 집 짓기, 장학금 등 지원…‘복음 전파’ 목적
지난 36년간 심장병 어린이 4,400여명에게 ‘새 삶’ 선물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의사는 그가 살아나도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지낼 것이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의식을 잃고 생사의 기로에 선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만약 깨어난다면 내 삶을 온전히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수많은 생명을 살릴 ‘기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난 36년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각국의 ‘심장병 어린이’(18세 이하)들에게 무료 수술비를 지원해온 밀알심장재단 회장 이정재 목사다. 젊은 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그는 어느덧 4,000명이 넘는 심장병 환자들의 은인이자 고마운 아버지가 됐다.

이 목사는 특히 심장병 환자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장학금을 후원하고 복음을 전했다. 덕분에 인도에서는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가 목사가 돼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등 풍성한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의 희생과 눈물, 헌신이 없었다면 밀알의 작은 씨앗은 결코 싹 틔우지 못했을 것”이라며 “나의 나 된 것, 사역의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히 고백하는 그에게서 밀알심장재단과 함께 걸어온 은혜로운 여정을 들어보았다.

심장병 환자들의 아버지
이 목사가 이끄는 밀알심장재단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어린이 심장병 환자들을 도와주는 곳이다. 진료 및 수술에 필요한 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건 물론 치료 후 장학금과 집 짓기 등 다각적인 도움으로 심장병 환자들이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격려하고 있다.

밀알심장재단은 한국에선 ‘교회’를 중심으로 해외에선 지부장 격인 ‘선교사’를 중심으로 심장병 환자들과 연결되면, 국내외 협력 병원들과 연계해 사역을 펼친다. 1987년 설립된 이래로 현재까지 전 세계 24개국 4,400여명에 달하는 심장병 어린이들의 귀한 목숨을 구했다.

이 목사가 이 엄청난 사역에 뛰어든 연유는 자신 또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때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가 난생처음으로 대우조선소에 취직해 생계 전선에 막 투입된 무렵이었다.

그러나 입사 몇 개월 만에 그는 24m 높이의 작업장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사람들은 의식을 잃은 이 목사를 두고 “운 좋게 즉사는 아니어도 평생 불구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경을 헤매던 저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너에게 생명을 주었는데, 너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 한 번만 저를 살려주시면 앞으로는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 오직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다친 데라고는 치아 6개와 어깨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찢어져 열두 바늘 꿰맨 것이 전부였다. 천만다행으로 뇌를 다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후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회사도 그만둔 그는 무작정 전도에 나섰다. 그리고 운명처럼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에서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감당할 형편이 안 돼 고통 중에 신음하는 심장병 환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하게 됐다.

“당시 심장병 환자들과의 만남은 충격적이었어요. 호흡이 어렵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가는데 돈 때문에 당장 수술을 못 받는 처지였죠. 그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한 부모가 제게 말하더군요. ‘죽어가는 내 아이를 살려달라고 큰 교회를 찾아가 호소해도 모두 외면했습니다. 한국교회에 정말로 사랑이 있습니까?’라고요. 그때 제가 짊어질 이웃은 바로 이 심장병 환자들이란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그 길로 이 목사는 퇴직금 1,000만원을 들고 밀알심장재단을 세웠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심장병 환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아픈 심장을 떼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심어서 저들의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게 하자는 마음이 든 겁니다.”

짊어진 생명의 무게
사명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이 목사는 첫 환자를 구하는 일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박지혜와 차하나, 아직 첫 환자들의 이름도 기억한다는 그는 거액의 퇴직금 1,000만원을 쏟아부어도 감당하기 힘든 이 두 명의 수술비를 채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먼저 2,000개의 교회에 ‘죽어가는 심장병 환자들을 도와달라’고 공문을 보냈어요. 한 교회당 1만원씩만 들어와도 2,000만원은 모이겠다 싶었지만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어느 작은 교회가 보내준 10만원이 끝이었죠. 그래서 ‘하나님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기도했더니 ‘교회를 원망하지 말라. 교회가 하지 않는 일을 네가 해주면 좋겠다’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결국 이 목사는 모금함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시장부터 기차역, 해수욕장, 경찰서, 심지어는 나이트클럽과 사찰까지 찾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갔고 기도로 날밤을 지새웠다. 첫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돈은 그렇게 모였다.

그가 이토록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던 까닭은 심장병 환자들의 딱한 처지를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목사가 심장병 환자들을 돕는 과정에서 만난 이웃들은 너무도 처절했다. 이 목사는 “차마 가슴 아파 입에 담기도 힘든 사연들이 정말 많다”고 털어놨다.

“당시에는 ‘집을 팔아도 못 고치는 병이 심장병’이라고 말 할 정도로 수술비가 비쌌어요. 집집마다 심장병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버려졌고 임신한 며느리가 심장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거리에 내쫓기는 일도 있었죠. 지금의 정서로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워낙 먹고 살기 힘든 그 때는 당장의 생계가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이 목사를 더욱 슬프게 한 건 가끔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만날 때다. 심장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수술로 나을 수 있지만 반대로 시기를 놓치면 속절없이 떠나보내야 한다. 특별히 그는 수술 후에도 끝내 주님의 품에 안긴 자녀를 둔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을 잊지 못한다.

“아이의 병을 알고도 수술비가 없어 애만 태우던 개척교회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러다 우리 재단을 알고 수술을 받았지만 너무 늦어버렸죠.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의료진 통보에 자신의 손으로 자녀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던 목사님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감히 어찌 그분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생명의 무게를 견디는 일은 이 목사가 평생 짊어져야 할 십자가일지 모른다. 그동안 새 생명을 얻은 4,400여명의 환자 수에 비해 세상을 떠난 이들은 극히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에 실패한 심장병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버거울 수밖에 없다. 차마 아이의 임종을 지켜볼 수 없는 부모를 대신해 본인이 아이의 산소호흡기를 뗄 때는 인간으로서의 무력감이 온 몸을 파고든다는 그다.

“효경이란 친구가 하늘로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효경이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금식하고 동분서주로 뛰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이 없던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한 겁니다. 효경이가 한 알의 밀알이 된 셈이지요. 살고 죽고는 다 하나님 손에 있고 한 가정을 향한 구원의 계획 역시 결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기적 같은 ‘새 인생’
밀알심장재단은 국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십시일반 모여지는 사랑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방대한 사역을 추진하기엔 힘이 부칠 법도 하지만, 이 목사는 “하나님과 후원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합작품”이라며 “오히려 그때그때 만나를 채워주심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후원자들 중에는 병원비 600만원을 헌금한 팔순의 안동 할머니가 있었고, 자신의 아파트를 기증한 사람도 있었고, 결혼자금을 기부한 신혼부부도 있었죠. 이 밖에 수많은 사역자와 목회자, 교회 성도들, 기업, 단체, 학교들이 동참해 준 덕분에 아름다운 ‘생명의 합창곡’을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밀알심장재단 간사들, 국내외 수많은 협력병원과 의료진까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난 건 축복이었습니다.”

덕분에 지난 36년간 4,400여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귀중한 생명을 선물한 밀알심장재단. 지금도 해마다 200여명의 환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더 멋진 건,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전달하고 취업까지 연결되도록 돕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자립을 위해 집짓기 활동도 펼치는 등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이 목사의 헌신에는 심장병 어린이들의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스며들길 바라는 간절함이 깃들어있다. 이는 그가 2000년도 늦은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백석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연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육체적인 병을 고치는 데서 사역이 끝나선 안 됩니다. 건강이 나아지면, 이들이 또 어떤 삶을 살지 모르잖아요. 저는 심장병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만나 진정한 구원을 얻을 때 비로소 삶이 변화된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치유받은 자녀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 부모도 자연스레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이들을 주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선 제가 신학을 배우고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이 목사는 그동안 해외 각지에서 심장병 환자들의 성공적인 수술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들도 개최했다. 심장병 환자 가족들과의 캠프, 체육대회, 장기자랑 등을 마련해 활발한 소통을 이어온 것. 또 10년마다 각국의 심장병 수술 환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심장병 수술 세계대회’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자리들에 심장병 환자들을 초청하는 이유는 그들이 ‘비전’을 갖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나를 도와준 밀알심장재단이 이렇게 멋진 곳이구나!’라며 자부심을 느끼고, 동시에 ‘나도 커서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야지’라는 소망을 품도록 동기를 심어주는 거죠.”

덕분에 밀알심장재단을 거쳐간 환자들은 선물 같은 제2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그중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된 친구들도 있고, 한국 유학길에 올라 전문 커리어를 쌓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 목사처럼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와 선교사가 된 환자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 아들 이외에도 세 명의 딸을 가슴으로 품었다. 베트남 국적의 브우, 중국 출신의 마페페, 몽골에서 온 헝그르졸이다. 이 목사는 외국에서 온 세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 정작 둘째 아들에게 “고등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 된다”며 검정고시를 제안했던 일이 지금도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한편, 그는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외서 다양한 상과 훈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포상인 국민포장을 비롯해 몽골 대통령 최고훈장, 캄보디아 국왕 최고훈장, 베트남 인민위원회 감사공로상 등 수상 내역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빼곡하다.

밀알심장재단 설립부터 지금까지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4~5시간 남짓이라는 이 목사는 1년에도 수 백회에 달하는 집회들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렇듯 노장의 나이에도 빡빡한 일정 탓에 결국 2년 전에는 간경화가 찾아왔다.

다행히 둘째 아들의 간 이식으로 다시 한 번 큰 고비를 넘긴 그는 “하나님께 제3의 인생을 주셨다”며 “전 세계 모든 심장병 환자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그날까지 사역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중에 제가 하나님 품에 안겨서 받고픈 상은 딱 하나뿐입니다. 전 세계 심장병 환자들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아빠, 사랑해요’ 상입니다. 그들이 ‘이 목사님은 죽기까지 나를 사랑해 주셨구나….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구나’를 깨달으면 좋겠어요. 이 귀한 사역에 한국교회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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