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긁어서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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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긁어서 교통사고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7.19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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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놔두면 될 일이었다. 그저 내버려 두면 자연히 아물고 새살이 돋을 것을 잠깐의 가려움을 이기지 못해 기어코 피를 보고 만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는 옛 조상들의 지혜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말로는 ‘스트라이샌드 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가수 겸 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사건에서 유래했는데 이야기가 퍽 흥미롭다. 때는 2002년,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지원으로 해안 기록 프로젝트가 진행돼 1만2천장의 해안선 사진이 업로드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 중 자신의 저택 사진이 포함된 것을 본 스트라이샌드는 사생활을 침해당했다며 사진사와 웹사이트에 무려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송은 제대로 역효과를 불러왔다. 이 소식이 뉴스로 전해지자 폭발적 관심이 쏠려 그 사진은 한 달 만에 42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까지 그 사진의 조회수는 단 6회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2회는 스트라이샌드의 변호사들의 작품이었음을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소송마저 기각되었으니 제대로 긁어 부스럼을, 아니 긁다가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한 셈이라고 하겠다.

예장 통합총회가 제108회 정기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선정했다. 총회 장소 선정이유를 설명하려 전례 없던 기자회견까지 자처한 걸 보니 어지간히 신경 쓰이긴 했던 모양이다. 명성교회가 한 차례 거절했음에도 도리어 임원회에서 재차 공문을 보내 허락해달라고 읍소하는 모양새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사실 명성교회 사건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그랬듯 머릿속의 성실한 일꾼, 망각이 작동하기를 기다리면 됐었다. 스스로 만든 헌법조차 잠재하고 ‘수습안’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등장시켜 어물쩍 넘어가려는 태도가 썩 곱게 보이진 않는다만 명성교회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총회 임원회의 욕심인지, 양 손바닥이 마주친 박수인지는 몰라도 구태여 총회 장소로 선정하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야 말았다. 아직 논란은 가시지 않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도 여전하다. 진작부터 통합 산하 노회와 단체들에서 반대 목소리가 빗발친다. 통합 임원회의 설명대로 화해의 시작이 될지, 혹은 갈등의 단초가 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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