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막힌 선교길, 역파송 선교사가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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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막힌 선교길, 역파송 선교사가 정답입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7.1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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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을 선교사로 역파송하는 ‘나섬 공동체‘
역파송 선교 제안한 나섬공동체, 30년째 선두주자로 개척
10년 신학공부까지 제대로… 전방개척 지역에 5명 파송섬공동체’

누가 알았을까. 돈을 벌겠다는 생각 하나로 찾아온 한국에서 사명을 발견하게 될 줄은. 10여년 전 한국에 도착한 몽골인 A 씨는 이곳에서 예수님을 알게 됐다. 그의 인생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가 한국에 온 목적을 통째로 뒤바꿨다. 한국에 처음 올 때는 상상치도 못했던 신학교에 입학했고 장장 10년에 걸친 공부를 마쳤다. 지금 그는 ‘역파송’ 받은 선교사로 고향인 몽골에 돌아가 가족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한국으로 돌아온 선교사가 전체 숫자의 40%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공식 집계일뿐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국했지만 집계되지 않는 숫자까지 더하면 70%에 이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세계화’를 향해 달려가던 지구촌의 레이스는 팬데믹을 계기로 다시 ‘지역화’를 향해 운전대를 틀었다.

이제 선교사, 목사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선교지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 아니다. 문단속을 강화하는 시대 앞에서 한국 땅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주민 선교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주민 선교의 종착지가 바로 이주민을 훈련시켜 고향의 선교사로 삼는 ‘역파송’이다. 이주민들을 제대로 훈련 시켜 선교지로 보내는 역파송 선교의 선구자 나섬공동체와 유해근 목사를 지난달 15일 만났다.

나섬공동체 베트남교회의 모습. 나섬공동체에서는 각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예배 공동체가 세워지고 있다.
나섬공동체 베트남교회의 모습. 나섬공동체에서는 각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예배 공동체가 세워지고 있다.

발상의 전환, 역파송

사실 유해근 목사에게는 역파송 선교의 선구자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선구자이기에 앞서 역파송이란 단어를 처음 만든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국인 선교사 파송이라면 익숙했지만 이주민을 그들 고향을 위한 선교사로 양육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던 시절. 유 목사는 선교지에 가장 적합한 선교사는 문화와 언어를 완벽히 습득하고 있는 현지인이라고 역설하며 ‘역파송’을 제안했다.

“이제 막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필요하다 싶어 이주민 선교를 시작했고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를 만들었어요. 사역을 하다보니 결국 이주민 선교의 가장 최종적인 목표는 이들을 선교지로 다시 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예수를 처음 믿은 사람이 양육받고 믿음이 자라나면 자연히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듯 이주민들도 마찬가지일테니까요.”

1990년대 초부터 구로 공단을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섬기기 시작했던 유해근 목사는 1996년 서울 성수동에서 나섬공동체의 전신인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를 설립했다. 역파송 선교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주민 선교를 밭을 일군 개척자였던 유 목사와 나섬공동체는 역파송 선교의 선두주자로서 이주민들을 교육하고 섬겼다. 당연히 그냥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해서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신학공부할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때만 해도 낯선 이주민 선교를 위해 재정도 모으고 시행착오도 겪고 고생을 많이 했었죠. 공부를 시작하고 싹수가 보이면 다른 교회나 단체에서 중간에 데리고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역을 하며 시력마저 잃었지만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모두 은혜였고 후회는 없습니다.”

 

역파송, 쉬운 일 아닙니다

제일 먼저 역파송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 온 나섬공동체가 거둔 열매들이 궁금했다. 수치는 놀라웠다. 알알이 가득 찬 포도송이처럼 수백, 수천의 역파송 선교사들이 배출됐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30년 가까이 역파송 사역을 해온 나섬공동체에서 키워 낸 역파송 선교사는 단 5명. 어쩌면 누군가는 초라하다고 평가절하할지도 모를 숫자다. 하지만 나섬공동체의 역파송 선교사가 5명인 것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선교 대안으로 이주민 선교가 떠오르면서 자연히 역파송 선교도 주목을 받았다. 이주민 선교를 하고 있는 여러 사역지에 조명이 집중됐고 어디는 이주민 역파송 선교사를 100여 명, 또 다른 곳은 수백 명을 보냈다는 소식도 들렸다. 문제는 이들을 진짜 ‘역파송 선교사’라고 부를 수 있느냐다.

“역파송이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사용되는 느낌이 있어요. 제대로 훈련도 시키지 않고 그저 한국에서 교회에 좀 나왔다가 돌아가는 것을 역파송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그저 한국에 있다가 집에 돌아간 것에 불과하죠. 한국에선 교회에 오면 혜택을 주니 나왔다가 고향에 돌아가서는 교회는 둘째치고 자기 옛날 종교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외국인 근로자 중 상당수는 당당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국가의 출신들이다. 이슬람 국가나 공산권은 물론이고 표면적으로는 교회에 갈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사회의 문화나 토속 종교가 발목을 잡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어느 정도 신앙이 생겼던 이들조차도 돌아가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든 실정. 큰 믿음 없이 교회라는 커뮤니티가 필요해 나왔던 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섬공동체가 생각하는 역파송 선교란 나그네를 순례자로 변화시키는 것. 똑같이 먼 여정을 떠나는 사람이라 해도 나그네에게는 목적지가 없다면 순례자는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나그네의 처지로 한국땅을 찾았던 이들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분명한 목적지를 발견하고 순례자의 삶을 결단하게 하는 것이 곧 역파송 선교라는 것이다. 이는 결코 가벼운 결단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 나섬공동체의 역파송 선교사가 단 5명인 이유를 알 수 있다. 나섬공동체는 고향에 돌아가 선교사, 사역자, 즉 순례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한 이들에게는 신학 공부를 권유한다. 이들이 공부하는 장신대 신대원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전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들도 입학부터 졸업까지가 쉬운 일은 아닌 과정을 언어도, 신학 용어도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 마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민족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단순히 결심을 넘어 이를 위해 전문가로 훈련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역파송 선교사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제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갔기에 그들 스스로 자신감도 상당하고 실제 교회 사역도 잘하고 있어요.”

인도로 역파송 선교사를 파송하는 유해근 목사(왼쪽)
인도로 역파송 선교사를 파송하는 유해근 목사(왼쪽)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안

그래서 한 사람의 순례자가 세워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족히 10년. 나섬공동체는 이들이 공부하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훈련을 받고 공부해 목사 안수까지 받은 이들만을 나섬공동체는 역파송 선교사라 부른다. 이런 과정을 거쳐 훈련된 선교사들 5명이 터키와 인도,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으로 파송됐다. 하나같이 외국인 선교사 신분으로는 복음 전도가 쉽지 않은 곳들이다.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선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언어 공부도 쉬운 일이 아닌데 무엇보다 그 문화적 충돌을 극복해야 해요. 하지만 역파송 선교사는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됩니다. 비자도 받을 필요가 없고 언어도 공부할 필요가 없으며 문화는 당연히 뿌리 깊이 이해하고 있죠. 현지인들을 어떻게 선교해야 할지 가장 잘 아는 것 역시 그들입니다.”

이란 출신으로 한국에 왔다가 사명을 받고 신학 공부를 마친 후 터키로 떠난 B 목사는 역파송 선교의 대표적인 사례다. 터키는 아랍권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쏟아져 들어오는 곳. 하지만 유럽은 포화상태인지라 오도 가도 못하고 터키에 발이 묶인 이란인들만 200만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그곳에서 그는 교회를 세우고 자국민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한다.

제자가 다시 제자를 낳는 열매가 역파송 선교 사역에서는 풍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벌써 9년째 터키에서 사역하고 있는 B 목사가 지난해 세례를 준 이들만도 200명이 넘는다. 그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유럽, 혹은 이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곳에서 제자로 살아가며 복음을 전하게 된다. 역파송이 또 다른 역파송을 낳는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지역주의가 심화됐고 선교사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팬데믹과 같은 사태가 또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어 쉬이 문이 다시 열리리라곤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교지 주민 스스로이자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복음을 전하는 역파송 선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교의 주요 대안이 될 겁니다. 한국교회가 역파송 선교를 통해 선교의 새로운 꿈을 꾸고 길을 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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