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백석에서 배운 기도 영성, 내 평생의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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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백석에서 배운 기도 영성, 내 평생의 버팀목”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7.14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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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증경총회장 손양도 목사 / 성신교회 원로
기적 같은 성장 뒤엔 하나님이 사용하신 설립자 있어
총회장 재임 중 대신과 통합 위해 발로 뛰던 기억 생생


“연합 정신을 믿음으로 계승해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길을 여는 백석총회가 자랑스럽습니다.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작은 교단과 교회들에게 우리 백석이 기댈 언덕이 되어줄 것입니다. 가히 백석은 한국 교계에서 큰 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훗날 역사가 이를 증명해줄 것입니다.”
예장 연합에서 목회를 시작해, 1981년 백석총회 전신인 합동진리총회와 통합한 후 1999년 제22대 총회장을 역임한 손양도 목사. 그는 “한국 교계에서 비교적 생소하게 인식되었던 백석총회가 불과 45년 만에 국내 3대 교단으로 꼽힐 만큼 번영한 것은 전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기적 같은 성장’에 설립자 장종현 목사를 들어 쓰신 하나님이 계셨다고 은혜를 고백했다.
1999년 9월 열린 제84회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신임원들. 가운데 손양도 총회장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회계 안용원 목사, 회의록서기 이주훈 목사, 서기 강말웅 목사가 서 있고, 손양도 총회장 우측으로 부총회장 노영호 목사, 부서기 장원기 목사, 부회의록서기 백금흥 목사가 자리했다.
1999년 9월 열린 제84회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신임원들. 가운데 손양도 총회장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회계 안용원 목사, 회의록서기 이주훈 목사, 서기 강말웅 목사가 서 있고, 손양도 총회장 우측으로 부총회장 노영호 목사, 부서기 장원기 목사, 부회의록서기 백금흥 목사가 자리했다.

 

“아무리 좋은 연장이라도 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는 결코 사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축복을 주시려 해도 우리의 그릇이 작으면 담을 수 없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러나 제가 본 장종현 목사님은 하나님의 선한 일에 예비된 일꾼으로서 합당한 그릇을 지닌 지도자이십니다.”

백석총회가 연합하며 성장하기까지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손양도 목사는 총회장으로 시무할 당시 예장 대신과의 통합을 위해 발로 뛴 기억이 있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통합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설립자 장종현 목사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양보와 희생을 결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모함하거나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손 목사의 기억에 그런 억울한 상황에서도 설립자는 분을 품거나 성을 내지 않았다. 도리어 그를 곤란하게 만든 사람이 나중에 시간이 흘러 마음을 열고 그의 편에 서는 것을 목격했다. 대신과는 신학교 문제로 통합이 무산됐다. 하지만 손 목사의 기억에 장종현 목사의 리더십은 잊을 수 없이 각인되어 있다.
 
“장종현 목사님은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셨고, 반대 세력도 끌어안는 지혜가 대단하셨으며 마침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연합 정신을 믿음으로 계승해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길을 터주시는 장 목사님의 포용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손 목사는 백석이 기도와 영성이 있는 교단이라고 강조했다. 일평생 목회 여정에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을 기도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선배들에게 배운 기도 덕분이다. 그는 이재선 목사와 계정남 목사, 그리고 장성운 목사가 끊임없는 회개와 간구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1973년 교회를 개척한 후 은퇴하기까지 기도로 영성을 쌓은 덕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손양도 목사가 개척한 성신교회는 경기도 상대원동 보통골에 세워졌다. 허허벌판에 초가집 방 한 칸을 빌려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없던 마을에 처음 교회가 세워졌으니 주변의 시선이 고울리 없었다. 세입자와 집주인의 따가운 시선 속에 1년을 버텼지만 결국 개척한 장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손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에 땅을 빌려 천막을 치고 다시 교회를 세웠다. 몇 안 되는 성도들이 목사를 따라 모여들었다. 막막한 상황에 닥칠 때마다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저녁 늦은 시간이면 뒷산에 올라 밤새 기도하고 새벽 4시가 되면 다시 내려와 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이어갔다. 목사의 기도를 지켜본 성도들이 기도대원을 조직해 교회와 집, 산을 돌며 기도하고 헌금도 해주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면서 상대원동에 땅을 사고 지하 8평짜리 교회를 마련했다. 형편이 되는 대로 증축을 거듭한 지 5년 만에 지금의 성신교회를 완공한 것은 정말 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이었다.
 
“백석에서 배운 무릎 꿇는 영성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역사입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1999년에 제가 기립박수를 받으며 총회장에 선출된 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임기 동안 평화로운 총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주력한 것이 다름 아닌 기도로 ‘성령의 경호’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손양도 목사는 목회자 가문을 일궜다. 자녀를 비롯해 집안에서 10명이 넘는 목회자가 나온 것이다. 그런 그가 강조하는 것이 ‘기도’다. 사람의 계획은 목회에서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와 노회, 그리고 총회의 자본은 기도밖에 없다. 아무리 사람의 일처럼 보이고 물질이 필요한 것처럼 보여도 범사를 주관하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오직 겸손함으로 기도하며 나아갈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을 위한 당부도 전했다. 45주년을 넘어 더 오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주님만 따르라는 것. 나이가 드니 사회적 지위도 재물도 건강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밖에 없더라는 노 목사의 고백은 마지막까지 주님을 따를 때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선한 일을 하고도 억울한 누명을 쓰며 십자가까지 짊어지신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서 사랑과 영성으로 하나가 된다면 백석총회는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석총회가 오래도록 한국 교계에 신앙의 이정표가 되어주길 가슴 깊이 바랍니다.”

정리=이현주 기자
 
* 이 글은 백석총회 설립 45주년 기념문집 <이기는 자에게 주신 이름, 백석>에 실린 손양도 목사 글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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