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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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셋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3.07.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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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가까울수록

히브리서 10:21~25
찬송: 249장

그 날이라 함은 우리의 생명이 다 하는 날, 또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말합니다. 이 날이 가까울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일이 아닌 영적으로 해야할 일들 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나아갑시다. 
둘째는 소망을 가짐으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소망을 썩어질 세상의 것에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가지되,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서로 돌아보아 격려해야 합니다. 서로를 돌아보며 격려하되 무시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과 선행으로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줘야 합니다.
넷째는 모이기를 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가 되어 갈수록 이런 저런 이유로 예배를 위해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과 교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자로서 예배를 위해 모이기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바른 길로 나아가며 신앙의 완주를 위해 원수와 같이 생각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형제 같이 알아듣도록 해야 하며 자신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 아닌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잊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권면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여 주님과의 만남이 감격의 만남이 되게 하옵소서.

 

좋은 열매를 맺는 자

로마서 6:12~23
찬송: 439장

성경에서 주님은 비유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7). 사람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못된 성향을 가지고 죄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는 죄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죄악 된 삶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영생에 이르는 의의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 멀리 하는 사람들은 몸에 사욕을 쫓지 않고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죄에게서 멀어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의에게 드려 거룩함에 이르도록 힘쓰는 자들입니다. 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의의 종이 되어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죄에게 종노릇을 하는 사람이라면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의 상관없이 죄의 종으로써 부끄러운 열매를 맺는 자들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열매가 맺어집니다. 우리는 구원이 우리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기초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선물 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이 되어 의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골로새서 3:16
찬송: 449장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빈약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말씀이 빈약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말씀이 생각나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 언행이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빈약하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어렵게 됩니다.
반면,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면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말씀이 풍성하면 수시로 말씀이 생각납니다. 말씀이 생각나면 본능과 세상의 이치와 철학과 이념과 자기 생각에 제동이 걸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풍성하게 역사하면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 뜻대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하게’는, 예수를 따르는 삶에 절대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풍성하게 하는 일은 쉽습니다. 성경 읽기와 설교 청종과 성경 지식을 쌓는 것으로 됩니다. 주의 말씀을 내 속에 풍성하게 채우는 일입니다. 열정을 보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보호, 감사합시다

출애굽기 23:16~17
찬송: 589장

인간은 아담의 원죄, 쓴 뿌리로 인해 어둠의 세계(세상) 가기를 좋아합니다. 인간의 습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수시로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배와 기도를 통해 결속(하나가)하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늘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다윗은 정치적 배경도 경험도 학벌도 화려하지 않은 양치기 소년으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높고 낮음도 부와 강하게 하심도 주의 손에 있나이다” 라고 노년에 지난 시간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인간 외의 피조물(동물, 생물등)은 감사의 표현이 없지만 우리는 인격을 갖춘 신앙인으로 천국의 소망을 품고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주님 뜻대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하지말고 상대를 높이고 칭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협력하는 것이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 더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손실을 보상하여 주시고 기쁨과 위로를 더 해주시며 사랑과 순종과 감사를 좋은 땅에 심을 때 100배 축복을 믿고 더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셔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빛 된 감사의 삶으로 화평과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 자녀가 되길 축원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마가복음 5:25~34
찬송: 524장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은 자는 구원도 영생도 없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전도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 다 좋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반드시 꼭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신앙생활은 언젠가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은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간절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접근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지에 손을 댔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고, 병도 고침 받고 그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데 사람들은 많고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를 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고, 구원을 허락받았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인생 중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내가 먼저 깊이 있게 예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광야의 외침

누가복음 3:2~6
찬송: 183장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약 400여년 이라는 시간 차가 있습니다. 영적인 암흑기,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에 해당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말 1:6~8에 잘 나와 있는데, 제사장은 타락했고 예배는 변질 됐으며 말씀은 왜곡되어 하나님을 멸시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암흑기의 침묵을 깨고 신약 처음에 등장한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그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로 들어와 경건 생활에 힘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 이미 이사야서에서(40:3~5) 예언했던, 사막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앞을 예비했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마무리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 광야로 나아갔듯이, 우리도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 아들이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미래가 보장된 제사장직을 감당해도 됐었습니다. 그러나 그 편함을 버리고 빈들의 예언자로 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에스겔 등 모든 선지자들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외칠 수밖에 없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침묵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혼탁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 세상은 하나님이 어디있냐고 비난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광야의 외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만이 내 삶의 소망 되심을 간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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