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직분자는 ‘교회 섬기는 봉사자’라는 인식 전환부터
직분의 사유화·계급화 문제, 제직훈련 부재에 따른 부작용
준비된 일꾼으로 헌신한 제직이 교회 성장에 유익 안겨줘
#. “우리 교회는 직분이 높을수록 봉사의 강도도 강합니다. 어느 장로님은 매주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기쁨으로 성도들의 신발을 정리하세요. 참 좋은 양들을 만난 덕분에 저는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시무하는 A 목사의 고백이 반갑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은 장로·권사·집사 등 ‘평신도 직분자’들이 하는 일을 잘 모르는 성도들이 많을뿐더러, 심지어 목회자와 장로들 간 다툼이 발생해 교회가 와해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각 지체가 연합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다. 다만,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평신도들이 갑작스레 직분을 감당할 때는 오히려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서는 평신도 직분자들을 위한 ‘제직훈련’이 활발하지 못한 모양새다. 평신도에게 직분은 때로 신앙 공동체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 되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제직훈련에 대한 재고와 변화가 필요하다.
소명이 없는 제직들
제직이란 목회자를 비롯해 직분을 맡은 평신도 사역자를 일컫는 말로써 장로, 권사, 집사 등이 포함된다. 직분의 역할과 권한은 교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제직의 본질이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자 ‘봉사자’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한국베델성서연구원 원장 이홍렬 목사는 “바로 이 사명감을 확인하는 일이 제직훈련의 첫 걸음”이라며 “평신도는 목회자의 든든한 ‘동역자’다. 성경에서도 바울은 실라, 빌레몬, 디모데, 누가 등 참으로 귀한 평신도들을 만나 복음의 길을 함께 걸어갔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릴 자를 뽑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을 세워 일을 맡겼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까닭도 기도하는 손을 붙들어준 아론과 훌 등 좋은 협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 <좋은 권사 되게 하소서>의 저자 상도성결교회 황대식 원로목사는 “교회 헌법에서 평신도 직분자의 직무는 모두 ‘교회 협력자’로 규정되어 있다”며 “예를 들어 ‘장로는 목사와 협력해 신자들을 관리하며 권징을 치리한다. 권사는 목회자를 도와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돌아본다. 집사는 목회자를 도와 신자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돌본다’고 나와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목회자는 평신도 직분자들을 말씀과 가르침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또 평신도들은 목회자가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며 “이것이 목회자와 평신도 간 진정한 동역이자 팀워크”라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갈수록 세분화 전문화되는 세상에서 다양한 은사를 지닌 평신도 직분자 혹은 지도자의 중요성은 더 증대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이홍렬 목사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조성하는 목회환경은 이 시대 필연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목회자는 더 이상 만능 전문가일 수 없다는 그는 “과거에는 목회자가 식자층이어서 다방면에서 리더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목회는 너무나 방대하고 과다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능한 목회자라 할지라도 혼자 힘으로는 다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교회 내 평신도를 목회의 대상이 아닌 동역자이자 사역의 주체로 보는 ‘평신도의 재발견’은 가치 있는 일”이라며 “단, 교육과 훈련으로 잘 다듬어진 평신도만이 교회의 뿌리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줄 자양분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정립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전했다.
명목상 직분자로 전락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는 제직을 세우는 일에 치우쳐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꾸준한 교육이나 훈련에는 비교적 소홀한 실정이다. 그 결과 교회마다 직분자들은 넘쳐 나지만 막상 제직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게 현주소다.
B 장로는 “1년에 한 번 교단 차원에서 실행한 직분 교육이 사실상 전부였다. 이 밖에 심화된 제직훈련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며 “제직의 정체성부터 직분별 임무, 나아가 평소 사역의 실질적인 고충까지도 터놓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의 말대로 현재는 임직 직후 혹은 신년에 몰리는 제직 수련회나 제직 세미나 이외에는 교단별 혹은 개교회별 제직훈련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이미 임직을 맡은 제직들의 자질 함양과 영적 각성을 위한 ‘재훈련’이 요구되지만, 제직훈련은 1년에 한두 번 단발성으로 끝나버린다.
이러한 제직훈련의 부재는 여러 부작용을 양산한다. 우선 직분을 맡아도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지 못해 의무와 책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걸 당연하게 여기거나 직분을 ‘명예’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고 있다.
교회의 제직을 특권이나 서열로 받아들이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직분을 소명에 따른 하나님의 부르심 대신 ‘계급’으로 간주하는 것인데, 이는 교회 안 분쟁과 분열을 초래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장 목회자들에 따르면 권사 투표에 떨어지면서 헌금을 돌려달라던 교인, 장로 투표에 떨어진 후 마음이 상해서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된 교인도 있다. 반대로 집사로 열심히 봉사했던 사람이 장로가 되면서 목사랑 동등하게 생각해서 불순종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홍렬 목사는 “준비 없이 집사나 장로, 권사로 임명받아서 사역하면 많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건강한 한국교회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근본적으로 사명감과 십자가 영성부터 기르는 제직훈련이 요청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대식 목사도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의 갈등, 혹은 다른 직분끼리의 다툼이 웬말이냐”라며 “제직훈련을 통해 모든 직분은 함께 섬기는 동역자라는 성경의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평신도 제직들이 목회자를 잘 조력할 때 비로소 교회는 성장한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준비된 일꾼이 돼라
결국 제직훈련의 목적은 각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함이다. 헌신적인 제직은 성도들을 신앙으로 온전케 하고, 궁극적으로 교회에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황대식 목사는 “성경에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고 나온다. 그러나 눈여겨볼 대목은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언급했다.
이어 “교회 안에 명목상 제직은 많지만 정작 훈련된 제직은 적다”며 “좋은 제직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신도 직분자가 잘 교육받고 훈련돼 사역에 적극적으로 투입된다면 교회 발전에 폭발적인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방치된다면 교회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책 <제직훈련과 교회성장>의 저자 최정성 목사도 “제직들이 각 분야에 무한한 자원이 된다고 믿는다”며 “제직들의 경험과 지식, 열정을 교회 사역에 적재적소에 활용해 교회의 사명 완수를 이루는 것이 제직훈련의 목표다. 제직들이 충성된 일꾼으로 거듭나 궁극적으로는 ‘복음 전파’라는 교회 본연의 임무에 동원돼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