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교회 공동체를 전기장판에 빗댄 적이 있다.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 전기장판에 등을 대고 솜이불을 겹겹이 두르고 있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 온기에 취해 있다 보면 바깥에 나갈 생각일랑 일절 사라진다. 그럴 때면 전기장판은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는 요새인 동시에 스스로를 묶는 자의적 감옥이 된다.
옥한흠 목사를 필두로 제자훈련이 한국에서 시작된 이후 많은 교회들이 너도나도 제자훈련 시스템을 도입했다. 목회자의 리더십에 의존하던 기존의 한국교회에서 평신도를 충성된 일꾼으로 훈련시킨다는 발상은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획일화된 제자훈련은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훈련이 교회 내에서 말 잘 듣고 봉사 잘할 일꾼을 기르는데 치중하거나, 목회자를 잘 따르며 교회 출석에 열심을 낼 성도로 만드는데 공을 들였다. 분명 교회 공동체 안은 따뜻했고 내부 구성원의 만족도도 높았지만 그럴수록 교회는 세상과 담을 쌓은 우리들만의 수도원이 됐다. 마치 온기로 몸을 녹여 집 밖에 나가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겨울의 전기장판처럼 말이다.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이 도입된지도 40년을 향해간다. 지나온 과거의 경험들을 반추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고민하기에 충분한 시간. 이제는 일요일의 제자, 교회 안의 제자가 아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진짜 제자가 필요하다. 적어도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겠다면 사도행전 속 제자들의 삶을 그저 전설이나 이상향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공장식’ 제자훈련의 한계
돈과 시간과 인력을 공장에 투자하면 제품이 생산된다. 신발 공장에 투입한다면 신발이 나올 테고 자동차 공장에 투입한다면 자동차가 나올 것이다. 입력값이 있다면 출력값이 있다는 단순한 논리다. 그런데 때로는 교회의 제자훈련 시스템이 공장에 비견되기도 한다. 돈과 시간과 인력을 교회에 투자하면 제자가 생산되는, 입력값에 따라 결과가 기계적으로 출력되는 메커니즘이 일견 공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양육에 최선을 다해왔다 자부하는 교회로서는 다소 기분 나쁜 비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교회가 전 생애에 걸쳐 성화가 필요한 제자를 기르기보다, 단기간의 교육으로 수료증과 함께 완성되는 ‘공장식 제자’를 양산해왔기에 나온 얘기다.
그렇게 양산된 제자들은 ‘제자훈련’의 어원이자 모티브가 된 사도들의 전철을 따라가기보다는 교회의 충실한 일꾼이 됐다. 송인규 소장(한국교회탐구센터)은 “제자도의 방향성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인류의 초기까지 거슬러 가고 온 세상의 운명까지 망라하는 개념”이라며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자의 주도 아래 제자훈련을 받기 때문에 은연중에 제자도를 영적 활동이나 교회생활에만 필요한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여기에는 획일화된 제자훈련 방식이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도식화된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어떤 교단이나 교회에도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 중 하나지만 교회의 특성과 성도들의 상황, 교회가 속한 지역의 필요를 담아내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종교사회학)는 “신학적 차이나 목회 현장의 차이, 교회 구성원들의 계층적 차이나 교회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는 원리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매우 강력해보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각 교회 공동체가 가지는 독특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역사적 책임의식도 약화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고 지적했다. ‘모두를 위한 제자훈련’을 지향했지만 정작 도리어 교회 밖의 ‘모두’는 담아내지 못하는 역설을 낳고 만 것이다.
획일화된 훈련 과정은 도덕성과 지성의 부재를 낳기도 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로 가장 많이 지적을 받는 대목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이다. 대부분 교회에서 제자훈련이 시행되고 수많은 ‘제자’들이 배출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결과다. 이는 지금의 제자훈련이 성도들의 도덕성과 윤리의식 함양에 기여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에서 사용되는 주요 5개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비교 분석한 김진규 교수(백석대)는 “성경은 믿음뿐 아니라 변화된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말과 행실, 사랑, 긍휼, 정의, 섬김, 겸손 등 도덕성도 함께 강조한다. 하지만 대부분 제자훈련들은 ‘덕성’ 훈련 요소들이 너무나 빈약한 반면 교리적인 내용만 넘쳐난다. 거룩한 지성을 구비할 수 있는 항목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면서 “덕성 훈련에 강한 제자훈련이 거듭나야만 진정 제자훈련을 거친 자들의 말과 행실과 의향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천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을
그렇다면 진짜 제자를 낳기 위한 제자훈련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선은 단기간의 훈련과 프로그램으로 제자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재고해야 한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듯 제자의 길이란 단기간 전력질주하는 100M 달리기가 아닌 일생을 걸쳐 걸어가야 하는 마라톤에 가깝다. ‘제자’라는 단어의 원저작자인 열두 사도들조차 예수님과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실수를 반복했다. 진짜 제자를 낳는 제자훈련이 되려면 좀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또 세상 밖으로 향했던 제자들의 삶처럼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 성숙한 교회의 공동체란 교회 내에서 공동체를 이룸과 동시에 교회 밖의 사회 안에서도 공동체 정신을 구현함을 의미한다. 50년 전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을 도입했을 때의 문제의식을 되살려 현대 사회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변화하고 그것을 넘어 사회에 제자의 삶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영 교수는 “한 사람의 신앙은 개인의 신념이라곤 하지만 믿음이 사사로운 것이라곤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는 믿음이 지닌 공공의 차원을 무시하게 된다. 폐쇄적인 종교성의 추구는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하고 다원화된 현대사회의 지평에서 어떤 기여도 할 수 없게 만든다”면서 “그리스도인은 교회 내부 활동만이 아니라 교회 밖 활동도 중요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고 제자훈련 역시 그런 그리스도인을 기르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자훈련은 교회성장론도 아니고 교회 성장의 도구도 아니다. 단순히 리더를 바꾼다거나 교재를 정비하는 혁신 정도로는 ‘제자’를 세울 수 없다. 결국 제자가 되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제자훈련은 박사학위 마냥 명예로운 ‘제자훈련 수료증’을 받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섬김의 삶으로의 숙연한 초청이어야 한다.
이상갑 목사(청년사역연구소, 산본교회)는 ‘실천형 제자훈련’을 제안했다. 단순히 교회에 모여 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가 제자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실천형 제자훈련이다. 이 목사는 “실천형 제자훈련은 사회적 약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구조적 모순을 살펴보고 교회의 자리를 확인하는 것이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이다. 제자의 길은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기에 결국 삶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가르치는 자 역시 먼저 제자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