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감사로 성장한 총회, 연합으로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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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감사로 성장한 총회, 연합으로 전진하라”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6.2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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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증경총회장 박대찬 목사 / 송파성민교회 원로

설립자 장종현 목사 총회 공로 커
홍찬환 목사와 총회관 건립 추억
은혜 측 성령운동 뿌리 내려 감사


백석총회 1대 총회장 장종현 목사를 시작으로 학교와 총회 발전에 공헌한 2대 총회장 고 허광재 목사, 그리고 합동 비주류를 이끌고 복음총회와 연합을 이룬 후 3대 총회장을 역임한 이상열 목사에 이어 4대는 최순직 목사, 5대는 이재선 목사, 6~7대는 이영 목사가 총회장을 맡았다. 다시 8~9대를 이상열 목사가 10~11대는 홍찬환 목사로 이어졌으며, 12~13대 총회장에 김준삼 목사, 14~15대 총회장에 이종정 목사, 16대 총회장에 다시 이상열 목사가 시무하며 총회를 이끌었다. 17대로 홍찬환 목사가 세 번째 총회장을 역임한 후 18대에 이르러 박대찬 목사가 총회장에 취임했다. 박대찬 목사가 회고하는 총회의 모습은 어떠한지 정리해보았다. <편집자 주>

“감사하는 총회는 모든 회원의 삶이 놀라운 기적적인 삶으로 회복되며, 그 역사가 곧 교회의 부흥으로 연결되어 성공한 총회를 이루게 됩니다. 백석총회의 성장이 바로 감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경하며 총회 사랑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결과가 오늘의 백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18대 총회장을 역임하고 송파성민교회를 담임했던 박대찬 목사는 오늘의 백석이 “감사”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했다. 박대찬 목사는 예장 은혜 측 소속이었다. 박 목사는 “그때 미아리 계곡에서 제자운동에 열성을 쏟던 고 이영 목사님의 <연합 측>과 대전에서 성령운동에 전력을 기울이던 <은혜 측>의 저와 홍태희 목사님이 만나 어떠한 조건도 없이 통합하여 <연합 측>이 되었고, 이후 장종현 목사님이 활동하시던 <진리 측>과 다시 아무런 조건 없이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고 회고했다.

18대 총회장 박대찬 목사(오른쪽)에게 깃발을 전달하는 17대 총회장 고 홍찬환 목사.

3개 교단이 만나 서로 존경하며 통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의 백석이 성령의 위대한 역사 속에서 지속적인 연합운동으로 한국교회를 선도하고 있다는 것. 박 목사는 3개 교단의 통합이 ‘믿음의 그루터기’가 되어 합동정통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해 나갔으나 사실 그 배경에는 백석대학교가 전국이 주목하는 종합대학교로 우뚝 섰기에 가능했다고 부연했다. 

“교회가 어느 교단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백석대학교가 있는 교단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게 됐고, 이것이 큰 힘이 되어 교회 부흥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한국 교계에 자리잡은 중대형 교단은 모두 신학교를 기반으로 한다. 신학교가 모태가 되어 총회가 생겨나고 신학적 차이로 총회가 분열되기도 했다. 신학교는 강단을 이끌어 갈 사명자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총회를 부흥 성장시키는 자양분 역할을 감당한다. 그런 점에서 방배동에서 시작된 대한복음신학교가 신학을 기반으로 하는 종합대학교인 ‘백석대학교’로 성장한 것은 총회의 뿌리를 든든히 하는 계기가 됐다. 

박대찬 증경총회장은 “이 모든 것이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 둘째는 영성의 열정으로 총회를 사랑하여 욕심 없이 물질도 기꺼이 희생하신 설립자 장종현 목사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 목사의 기억 속에 총회를 발전시킨 첫째 공로자는 설립자 장종현 목사다. 방배동의 보수신학에 은혜 측의 성령운동을 받아들여 주었고, 개혁주의생명신학에 오순절 다락방의 역사를 하나로 일치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평가했다. 

박대찬 목사는 장종현 설립자에 이어 백석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한 사람을 더 꼽았다. 자신이 부총회장으로 있으면서 섬긴 17대 총회장 홍찬환 목사다. 그는 “고 홍찬환 목사는 헌신적으로 총회를 사랑하신 분”이라고 표현했다. 총회 산하 교회들이 대부분 영세한 상황에서 총회관을 세우고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신 분이라고 말했다. 총회관을 마련하기 위해 박대찬 목사는 홍찬환, 강말웅 목사와 함께 3년 동안 전국을 돌며 모금운동을 진행했다.

약속한 곳에 찾아가서는 10시까지 기다려 헌금을 받아 오기도 했다. 그렇게 3억원을 모았고, 모자란 5억원은 장종현 설립자가 헌금해주었다. 그렇게 총회관을 마련하고 눈물의 현판식을 가졌다고 박 목사는 회고했다. 그때가 총회에서 처음으로 총회관을 세운 역사적인 때다. 

총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박 목사는 <기독교연합신문>의 공로도 언급했다. 기독교연합신문이 전 교계로 전파되면서 영세 교단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그 결과 백석총회에 손을 내밀어 가입하는 연합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던 것. 

학교와 총회, 신문사가 하나가 되어 백석의 발전을 이끌었고, 설립자 장종현 목사를 중심으로 역사의 마디마다 총회를 사랑하고 헌신한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백석이 있을 수 있었다. 

박대찬 목사는 “45년 동안 헌신적으로 수고하신 역대 총회장님들이 십자가 정신으로 드린 희생적인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신 결과가 오늘의 백석”이라며 “모든 성장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고 십자가 정신과 낮은 자세의 심령으로 세상에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흩어진 교단들이 생기의 절실함을 깨달아 사도행전 1장 4절처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한마음으로 연합하여 새바람이 불기를 간구하는 것만이 한국교회의 살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백석총회의 45주년이 한국 장로교단을 한마음으로 예루살렘에 머물게 하는, 장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기도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리=이현주 기자 

* 이 글은 백석총회 설립 45주년 기념문집 <이기는 자에게 주신 이름, 백석>에 실린 박대찬 목사 글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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