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넷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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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넷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3.06.2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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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은혜

창세기 13:5~9
찬송: 212장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이들의 소유가 많아짐으로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합의점을 생각한 아브라함은 앞으로 정착할 영토를 선택할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주었습니다.(창 13:9) 
조카 롯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만한 곳은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 거하는 땅이었던 것입니다.
조카 롯은 눈에 좋고 아름답게 보이는 땅을 주저 없이 선택하고 그 땅에 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땅이 이후에 하나님 앞에 더 이상 팜을 수 없는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은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는 심판을 하셨습니다.(창 19:24)
반대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축복하십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끝 같게 하리라.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본문의 조카 롯이 겸손한 마음을 겸비하여 삼촌 아브라함에게 선택권을 주었더라면, 또한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하기 전 하나님께 물었더라면 죽음 직전까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허락하시대로 목회와 맡은 바 직임을 욕심 없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겸손함으로 모든 일들을 감당케 하옵소서.

 

가장 값진 요셉의 눈물

창세기 45:1~5
찬송: 182장

형제들을 만난 요셉은 넘쳐흐르는 감정을 억제 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회개와 감동이 교차한 눈물이었습니다. 눈물도 값진 눈물이 있습니다.
요셉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은 유다의 간절한 호소와 회개(창 44:18~34)에 의해 마음이 동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험하고 완고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간절히 호소하고 회개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간절한 마음이나 회개함이 없이 하나님을 그저 엄격하고 두려운 존재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마음으로 나가면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눈물은 단순히 정을 억제하지 못해서 흘리는 눈물만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 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을 지켜보던 요셉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요셉의 눈물은 가장 값진 눈물입니다. 회개의 눈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여 흘리는 뜨거운 눈물 등은 아마도 가장 값진 눈물일 것입니다. 
요셉이 사랑하는 형제들 앞에서 참을 수 없어서 흘리는 사랑의 눈물을 우리 이웃을 위하여 눈물을 흐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은혜의 의한 값진 눈물로 주님 앞에 서는 삶이 되게 하소서.

 

병 낫기 위해 서로 기도하라

야고보서 5:14~16
찬송: 474장

인간이 사는 동안 질병을 완전히 피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교인 중에 환자가 있을 때 환자 자신과 교회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환자가 장로를 청하면 본의 아니게 병을 공개하게 됩니다. 성도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교회에 공개하고 믿음의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기름 바름은 의료적 치료이고, 기도는 신유적 치료입니다. 신앙만 고집하고 의료적 치료를 거부하는 것, 현대 의술을 지나치게 신뢰하여 영적인 신유적 치료를 거부하는 것 둘 다 문제입니다. 성경은 의료와 신유를 모두 인정합니다.
셋째,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 한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를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병을 치료한다는 믿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환자 자신도 기도하고 부탁받은 교회도 기도하고 둘이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료를 위해 함께 대응해야 합니다. 의료적 치료와, 영적인 치료를 위해 믿음의 기도로 함께해야 합니다. 주께서 환자를 일으키시는 치료 힘이 클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의 이름으로 우리 병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언약궤의 능력

출애굽기 25:10~12
찬송: 492장

하나님은 율법의 시작인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법궤, 언약궤, 증거궤의 재료는 쓸모없는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어 그 안에 귀한 ‘십계명’을 넣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시고 섬겼습니다. 언약궤 안에서의 능력은 첫째 소망과 영광을 보여줍니다.(수 7:3~21) 여호수아는 가나안땅에 입성할 때 요새의 성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락시키고 정복하였습니다. 반면에 약한 ‘아이성’ 전쟁에서는 패배하였습니다. 아간이 하나님의 성물을 훔쳐 숨겼으므로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법궤 앞에서 종일 회개기도 하며 용서를 구할 때 절망이 소망과 영광으로 나타난 줄 믿습니다.
둘째 적들에게 멸망을 주십니다.(삼상 5:2~4) 블레셋이 전쟁에 승리하여 법궤를 ‘다곤’신상 곁에 두었는데 다곤신상의 얼굴이 땅에 닿았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몸뚱아리만 남았습니다. 오직 상천하지에 유일신은 적들을 물리치고 멸망을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궤 앞에서의 축복(삼하 6:9~11) 다윗성을 향해 운반하는  법궤의 수레가 흔들거리자 레위인 ‘웃사’가 붙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왕은 두려움에 법궤를 어찌할 바 모를 때 하나님을 으뜸 되게 살아가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 겸손한 용기로 자발적으로 그의 가정에 석 달을 모셔 하나님은 오벧에돔과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도 하나님 언약궤 앞에서(코람데오) 열매를 맺는 축복의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편 121:1~2
찬송: 214장

우리가 삶을 살다보면 나의 힘으로 안 되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누군가가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줄 사람들을 찾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곧 그 기대가 실망으로 다가옴을 또다시 경험합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기보다, 어느새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부터 찾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찾다 보면 여지없이 실망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시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인생도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다시금 말씀해 주십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합시다. 우리의 도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의 기도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명심하게 하옵소서.

 

빌기를 다하매

사도행전 4:31
찬송: 365장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잡혔다가 풀린 후,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던 중,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빌기를 다했다는 것은 기도가 끝났다기보다 기도의 분량이 찼다는 의미입니다. 즉, 기도의 분량이 차면 그 자리가 진동하고, 성전이 진동합니다. 이 진동은 기도의 응답이기도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진동들이 있을까요? 
첫째, 마음이 평안해지는 진동이 옵니다. 빌 4:6~7 말씀처럼,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평안할 때까지, 즉 기도의 분량이 찰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길이 열리는 진동이 옵니다.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더라” 이것은 마치 말 3:13~14 말씀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기도 안 해도 별일 없더라”라고 말하는데, 오늘도 누군가가 나를 위해 땀과 눈물로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별 일이 없음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또한 “나중에 기도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도 안 해서 별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기도를 저축해 두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꼭 경험하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기도의 분량을 채워서 나의 삶에 진동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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