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시간’을 그리는 시간 여행자의 순례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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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의 시간’을 그리는 시간 여행자의 순례길을 따라서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3.06.19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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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쉐미미술관 방효성 작가 기획초대전 개최

‘탈(脫) 경계의 언어’ 주제로…오는 25일까지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과 경계 허문 작품 선뵈

양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가위를 들고 서 있다. 그가 거침없이 한쪽 소매의 옷깃을 가위로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한쪽 소매의 옷조각이 갈기갈기 찢긴 채로 반대편 오른쪽 옷소매만이 본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윽고 입었던 옷을 벗고 파란색 배경의 ‘Kingdom of heaven’라는 글씨가 적힌 외벽에 매단다.

왜 그는 멀쩡한 옷을 잘랐을까. 방효성 작가(송학대교회 장로)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6:3)라는 말씀을 무언의 극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아울러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오른손에 의해 약자를 의미하는 왼손이 착취당하고 쓸모없게 되어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러나 몸은 본래 하나의 지체로 한쪽이 죽게 되면 결국 남은 한쪽도 완전할 수 없게 된다.

‘2023 쉐마미술관 기획초대전’이 방효성 작가 개인전으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청주 쉐마미술관에서 열렸다.

‘2023 쉐마미술관 기획초대전’이 방효성 작가 개인전으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청주 쉐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방효성 작가는 참신하면서도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기독교 미술의 저변을 확대를 위해 힘써왔다.

‘탈(脫) 경계의 언어’라는 주제로 열린 개인전에는 평면드로잉 20점과 입체 설치작품이 전시됐다. 소전시실에는 그가 20년 동안 진행해온 퍼포먼스 공연 20편을 각 5분으로 압축한 100분의 영상이 상영됐다.

그는 평면드로잉 작업과 설치, 입체 미술과 행위예술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독교 미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는 실험적이면서도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지난 16일 전시장에서 만난 방효성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인간은 측정 가능한 수평적인 ‘크로노스(Kronos)’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카이로스(Kairos)의 하나님의 시간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그동안 시간 여행자로 살아가며 수평과 수직의 시간을 엮어가며 채집한 기록을 털어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갈구하지만, 결국 제한된 시간 안에서 고군분투하다 소멸되고 만다.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은 신의 수직적인 시간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는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의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방 작가는 시간 여행자로서 살아가면서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과 경계를 허문 작품들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하나의 은행나무를 1년 동안, 시간의 흐름을 두고 찍은 사진 20 컷이다. 옆면에는 몇 년 치의 은행나무잎을 모아놓은 작은 상자가 함께 전시돼 있다.

은행나무 한 그루를 365일, 4계절 내내 찍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같은 나무라도 할지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며 존재하게 된다. 한컷 한컷은 다른 모양지만, 동일한 은행나무다. 작품 속에는 고스란히 1년치의 은행나무의 시간이 들어가 있다.

‘2023 쉐마미술관 기획초대전’이 방효성 작가 개인전으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청주 쉐마미술관에서 열렸다.
‘2023 쉐마미술관 기획초대전’이 방효성 작가 개인전으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청주 쉐마미술관에서 열렸다.

또다른 진열장 안에는 곰팡이가 피어있는 떡이 놓여 있다. ‘부패하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이 작품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모든 물질이 부패하고 썩을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방 작가는 “이처럼 한 작품을 통해 시간의 연속성을 담아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어떤 작품은 10년, 20년도 들어갈 수 있다”면서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간 속에 자유로움을 누리길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

그의 이번 전시전에는 새가 없는 새장이 등장하고, 금붕어가 없는 수족관이 등장한다. 그 대신 성경책 한권만이 물 속에 잠겨 산소호흡기를 단 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현대인의 성경’이라는 이름의 그의 작품은 성경책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부적처럼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는 설치물이다. 이렇듯 그의 전시회에는 기존 기독 미술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방효성 작가의 작품, '현대인의 성경'
방효성 작가의 작품, '현대인의 성경'

방 작가는 그의 작품이 가진 표제적 언어를 해석하려 하기보다는 ‘조형적인 미(美)’에 집중할 것을 요청한다. 순수미술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제에 따른 의미 부여가 아니라 조형적인 탁월성으로 작품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에 있다는 것.

방 작가는 “어떠한 기독교적 주제에 갇혀 상상력의 제한을 두지 않고 작가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집중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독미술을 종교화나 성화로 구분해 선교 목적의 표제적 언어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영성을 담고 있는가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기독 미술이 가진 확장성과 가능성을 무한히 뻗어가게 만든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시지 않는다면 한점의 드로잉 작업도 할 수 없다. 순례의 여행길에서 만나는 삶의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겨 세상에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인생은 짧고, 예술도 짧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효성 작가는 경희대학교·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했으며, 1987년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오사카, 대구 등에서 29회의 개인전을 개최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경과 뉴욕, 예루살렘, 베를린, 이스탄불 등 국내외에서 지난 30년 동안 300여회가 넘는 퍼포먼스와 설치, 드러잉, 자연미술을 발표했다. 또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회장, 대한민국 기독교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방효성 작가는 그의 작품이 가진 표제적 언어를 해석하려 하기보다는 ‘조형적인 미(美)’에 집중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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