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조차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우주 설계의 신적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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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조차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우주 설계의 신적 개입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3.06.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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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14)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현대 과학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크고도 광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른바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로 감이 잘 잡히지 않는 엄청난 숫자들을 의미한다. 예컨대 전 지구상의 바닷가의 모래 숫자보다 하늘의 별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하는 것이 지금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정설이 되었다.

말하자면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이며 우리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 가운데 하나이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에는 이 태양과 같은 별이 몇 개나 있을까? 1,000억 개의 별이 은하계에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온 우주에 은하계와 같은 은하가 1,000억 개가 있다고 하니 우리의 좁은 머리로는 우주의 크기를 가히 짐작하기가 불가능하다.

평균 수명이 많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100여년 남짓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라고 한다. 마치 하루살이가 일년생 화초를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한계와 연약함을 우리는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편 90편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0~12절)

지금 과학자들 사이에서 유불신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가장 신빙성 있는 증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fine-tuned universe)라고 하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의 이 장대한 기간 가운데 생명이 가능했던 시기와 공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오늘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확률적으로는 낮은 가능성의 세계에 기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설계 운동을 반대하면서도 모종의 설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다만 우리로서는 설계이론이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라면,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과학을 통해 주어진 것을 중시한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넘어가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대과학의 흐름 자체는 그렇게 반기독교적이지 않다.

전체적인 현대과학의 발전이 꼭 기독교신앙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는 주장에 대해 무신론적 진화론자들로 대표되는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존재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캠브리지 대학의 수리물리학 교수였다가 성공회 사제가 되었고 과학과 신앙의 문제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던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202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재 다른 과학의 분과들보다 생물학계 내에 특별히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종교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이 편만해 있는 이유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생물학자들이 다루는 현실이 물리학자들이나 다른 자연과학자들이 다루는 현실보다 더 복잡하고 무질서하며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은 간결하고 아름다운 기초 물리학적 질서를 제시한다. 하지만 생물의 세계는 냉혹한 약육강식의 질서가 지배한다.

둘째로 폴킹혼은 생물학자들이 “무분별한 환원주의적 승리주의의 유혹”에 굴복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유전학이 분자구조를 벗겨냄으로써 생물학은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승리는 예전에 물리학이 우주 중력의 작용을 밝혀 태양계 운동을 설명함으로써 거두었던 승리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너무 쉽게 “우리 인간은 유전적 생존 기계들(genetic survival machines)에 불과하다”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단지 유전적 생존기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생물학자들의 이러한 열광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과학과 신학의 상호작용에 기꺼이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생물학자들이 보다 많이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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