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는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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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는 다 똑같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5.18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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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선교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이었다.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준비모임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선교사들,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선교단체 대표들이 자리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준비모임. 논의의 흐름은 자연스레 이번 NCOWE의 핵심 논제인 ‘선교 패러다임 변화’로 향했다. 골자는 서구교회가 중심이 됐던 일방향 선교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인 중심의 총체적 선교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후에 얹어지는 부연 설명들엔 약간의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 참석자가 “선교사들은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데 지역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지역교회 목회자들에게 이런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을 어떻게 인식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발언하자 여기저기서 동의와 수긍이 뒤따랐다.

마치 선생이 어린 학생을, 문명 국가가 야만 부족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뉘앙스로 들렸다면 기자의 지나친 예민함일까. 물론 실제로 교회 현장에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이 확산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쉽사리 바뀌지 않는 교회들을 보며 어느 정도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가장 답답했을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었을 것이다. 전지전능하며 흠이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바라보기엔 우리 무지몽매하고 죄 많은 인간들은 밤새도록 회초리를 들어가며 가르쳐도 부족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말구유에 오셔서 우리와 호흡하시며 가장 수치스러운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를 우리는 경외를 담아 ‘성육신’이라 부른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물론이요 같은 믿음의 형제, 자매 사이에서도 성육신적 자세는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그 누구도 잘나거나 못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사 말미 마이크를 잡은 한 지역교회 목회자는 “우리 목회자들도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을 잘 알고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나지막이 발언했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였다. 발언 이후 행사장엔 잠깐 어색한 웃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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