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버선발로 새벽기도하러 간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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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버선발로 새벽기도하러 간 권사님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3.04.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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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 초기 교인들의 발자취에 대한 책을 요즘 집중적으로 읽었다. 전택부 선생, 이덕주 교수가 쓴 책들에 목회자와 평신도의 미담이 많이 실려 있어 감동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 고향 교회의 김다복 권사님 생각이 났다. 내 친구의 할머님이고 생전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책에 실릴 만한 신앙의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자형(姊兄)을 통해 자세히 들었던 이 권사님의 사연은 이렇다.

김 권사님은 처녀 때부터 믿은 분이다. 우리 옆 동네인 새터도마부락 김씨네 집안으로 시집오셨다. 그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믿지 않는 분이었다. 하지만 권사님은 새댁이 되어서도 여전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가까운 동네에 교회가 없자, 처음에는 거의 10리 너머에 있는 서두교회를 다녔다. 나도 세례 받은 교회지만, 권사님이 새터도마리에서 그 교회까지 가려면 서너 마을을 거치고, 몇 개의 야산을 넘고, 방죽을 지나야 했다. 하지만 권사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야말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일예배는 물론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러 다니셨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 문제였다. 고무신 살 돈도 없을 만큼 가난했기에, 짚신을 삼아서 신었다. 집을 나서서 걸으면, 한 오리쯤에 있는 만대라는 부락쯤에서 그만 짚신 코가 떨어져 버려서(요즘말로 짚신의 올이 다 풀어져 버려서), 더 이상 신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짚신을 벗은 채 버선발로 그냥 눈길을 걸어서 교회까지 갔다.

그 언발로 교회에 도착하면, 장로님들이 난롯불을 쬐고 있다가, 달려 나와 맞이했다. 그 먼 거리에서 어떻게 이렇게 언발로 오셨느냐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냥들 얼싸안고 한참씩 울었다.

권사님은 평생 가난하게 사셨고, 남편한테 일 않고 전도하러 다닌다고, 교회 다닌다고 숱하게 머리끄덩이를 잡히는 고초도 겪었다. 교회 나가기 때문에 가난하게 산다고 이웃사람들한테 조롱도 받았다. 하지만 항상 당당했다. 잘사는 사람들이 이분한테 하대하고 싶어도, 워낙 꼿꼿하게 말하고 행동하니까 감히 아무도 하대하지 못했다.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사신 분이라 하겠다.

이분 대에는 가난했으나 지금 그 집안은 인근에서 모두가 존경하는 가정이다. 큰아드님이 장로를 거쳐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다 작고했다. 손자 중에서 목사가 셋, 장로가 둘이다. 장손자인 김백경 목사는 장로회합동측 전주노회장을 역임했으며, 셋째 손자인 김복경 장로는 건축 일을 하는데, 아이엠에프 때 남은 다 놀아도 이분은 일거리가 밀릴 정도로 돈을 많이 벌어 교회를 섬겼다.

권사님의 기도는 남달랐다.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물론 그때야 의자가 없는 때이기도 하지만, 항상 마룻바닥에 엎드린 채 기도하셨다. 만군의 주이신 하나님께 감히 앉아서 기도드릴 수 없어 그랬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하겠다.

그분의 기도 내용과 어조도 특별했다. 보통은 대표기도를 포함해서 기도할라치면, 웅변하듯이, 마치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한테 하듯 하기 일쑤인데, 김다복 권사님의 기도는 그렇지 않았다. 개인기도든 대표기도든 그러는 일이 없었다. 바로 아주 가까이 하나님이 계시는 것처럼, 그렇게 나즈막하게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기도를 여러 번 들었다는 우리 자형의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기도를 들어봤지만, 김 권사님의 기도 같은 기도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분은 가셨으나,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나도 그분처럼 새벽기도하러 매일 교회에 간다. 하지만 폭설이 내리거나 폭우가 쏟아지면 빼먹기 일쑤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간절함과 정성이 부족한 탓이리라. 이번 주에 맡은 대표기도만이라도 흉내를 내보고 싶다. 목에서 힘을 빼고, 옆에 계시는 하나님께 말씀드리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도해야지 마음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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