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산타클로스의 고향
상태바
[은혜의 샘물] 산타클로스의 고향
  • 최운식 장로
  • 승인 2022.12.23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운식 장로/서울장위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최운식 장로
최운식 장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어린이들은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요즈음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는 하얀 수염에 흰 깃을 단 빨간 외투를 입고, 썰매를 타고 다닌다. 그래서 산타의 고향은 추운 북유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부응하여 핀란드 로바니에미에는 산타마을을 조성하고, 산타우체국을 세웠다.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곳으로 와서 보관된다. 그리고 보낸 사람의 요청이 있는 편지는 적혀 있는 주소로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원조 산타의 고향은 북유럽이 아니라 튀르키예 뎀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산타클로스는 “4세기경 미라의 주교였던 성인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적혀 있다. <두산백과사전>이나 <네이버지식백과사전> 등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미라(Myra)’는 4세기경에 지금의 튀르키예 남부 ‘뎀레(Demre)’에 있던 도시국가이다.

나는 10여 년 전에 튀르키예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뎀레를 찾았다. 이곳은 고대 리키아 동맹 여섯 도시국가 중의 하나인 미라가 있던 곳이다. ‘칼레(Kale)’라고도 하는 이 도시의 인구는 지금 15,000명쯤 된다. 이곳에는 산타클로스의 실제 인물인 성 니콜라스(St. Nicholas, A.D. 270~346)가 주교로 시무하던 니콜라스 교회가 있다. 지금 이곳은 ‘성 니콜라스 박물관(Noel Baba Müzesi)’이라고 하여 입장료를 받으며 공개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A.D. 3세기부터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6세기에 세워지고, 8세기 이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된 것이라고 한다. 교회 뜰과 교회 입구에는 니콜라스 주교의 상이 서 있다. 교회 안의 벽에는 이곳저곳에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성화가 그려져 있다. 가장 넓은 방은 예배를 드리던 곳인데, 그 옆의 작은방에는 니콜라스의 석관묘(石棺墓)가 있었다.

니콜라스는 A.D. 270년경에 이곳 미라의 이웃 도시인 파타라(Patara)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고, 미라로 와서 주교로 임명되었다. 니콜라스는 주교로 있으면서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는 기도가 영검하였으므로 ‘구원의 성인’, ‘기적의 성인’, ‘선물을 주는 성인’으로 깊은 존경을 받았다. 그가 죽은 뒤에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니콜라스의 이름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당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두 번째로 비중이 큰 교회의 주교였던 니콜라스의 언행과 명성은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에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인물이 되었다. 가톨릭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숭배하였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인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를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그를 ‘산테 클라스’라고 불렀다. 이 발음이 미국어화하여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19세기에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산타클로스는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상상의 인물이 되었다.

독일을 비롯한 게르만 신화에서 선물을 주는 신은 ‘오딘(odin)’이다. 오딘은 하얀 수염을 달고,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녔다. 게르만 민족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산타클로스가 널리 알려지면서 신화에 나오는 오딘의 역할이 산타로 바뀌었다. 그래서 산타크로스가 하얀 수염을 달고 썰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산타클로스가 흰 깃을 단 빨간 외투를 입고 뚱뚱한 모습으로 변한 것은 1931년 미국의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에서 그린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 온다. 미라의 한 귀족이 갑작스럽게 몰락하여 세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딸들을 명문가에 시집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니콜라스는 밤에 몰래 금화 주머니 3개를 가지고 가서 창 너머로 던져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창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할 수 없이 금화 주머니를 굴뚝 안으로 던졌다. 이튿날 아침에 금화 주머니를 발견한 귀족은 딸들에게 지참금으로 주어 좋은 집으로 시집보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굴뚝으로 준다고 하는 것은 이 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성 니콜라스와 같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현대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선행을 널리 알리고 치하하여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선행에 가담하게 해야 한다. 제2, 제3의 산타클로스 출현을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