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안녕’을 위한 구원의 방주, “사랑한다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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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안녕’을 위한 구원의 방주, “사랑한다 말하세요”
  • 천안=이인창 기자
  • 승인 2022.11.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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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에 소망을 둔 안식처 ‘선한이웃요양병원’

심승규 원목과 심석규 병원장의 아름다운 콜라보
매달 20~30명 영접, 임종 대기실 틈날 때면 찾아
설립정신·의료시설 뛰어나, “선교병원이 우리 꿈”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뿐. 천안시내에서 차로 15분이면 선한이웃요양병원은 부와 명예를 내려놓은 의료인 한 사람의 결단으로 시작됐다. 위기도 많았고 과정도 험난했다. 심석규 병원장은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을 돕고, 예수님을 꼭 만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만을 바라보며 한결같이 달려왔다. 그래서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안수까지 받았다. 

현재 290병상 규모로 인근에서 가장 큰 요양병원이 된 것은 은혜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고즈넉한 야산을 배경에 둔 선한이웃요양병원, 바로 뒤편 천안노인전문요양원(평안의집)은 말기환자와 어르신들에게 구원의 방주가 되고 있다. 올해 심석규 병원장의 친형 심승규 목사가 원목으로 합류하면서 복음은 더 뜨겁게 전파되고 있다. 

선한이웃병원은 이 땅에서 생을 마무리하는 환자들에게 구원의 방주가 되고 있다. 심승규(왼쪽)·심석규 목사는 천국에 소망을 둔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병원을 이끌어가고 있다. 

형제의 연합으로 전해지는 복음
선한이웃요양병원 지하 1층 ‘샬롬교회’ 문을 열자 9명의 어르신들과 함께 심승규 목사가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입원환자 중 스스로 교회를 찾은 어르신들이다. 성경공부에서 말씀을 배우고 질문도 하면서 활력을 얻은 듯했다. 

심승규 목사는 20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후 목사안수를 받았다. 서울에서 단독 목회를 하다가 오랫동안 병원 사역을 도와달라는 동생의 청을 더는 물릴 수 없어 올해 5월 합류했다. 무엇보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을 서둘러 영접을 시켜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컸다. 심 목사는 동생이 시작한 병원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병원 일상에서 항상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형제가 공동으로 목회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생은 병원장으로 환자에 더 전념하게 됐고, 저는 병상 환우 전도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대부분은 영접하십니다.”

심승규 목사의 수첩에는 층별, 호실별로 환자들에 대한 전도 현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한 달이면 20명에서 30명이 영접한다. 형제는 올해 백석총회 충남노회에 함께 가입하기도 했다. 형제가 연합해 아름답게 구원 사역을 이루어가고 있다. 

여동생 죽음, 호스피스사역 계기 
선한이웃요양병원은 심석규 병원장이 의사로서 돈과 명예를 내려놓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면서 시작됐다. 한때 서울에서 병원을 개업했던 그는 1994년 천안으로 내려와 남천안제일병원을 개원했다. 개원 첫날부터 환자가 넘쳤다. 병원은 잘돼 돈을 벌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섬김 사역에 대한 부담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스피스 사역이 그 중 하나였다. 

심 병원장은 부모님에게 배운 신앙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돌봄에 관심이 컸다.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시도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높은 현실의 벽만 경험하고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다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를 일깨웠다.

“교환 교수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던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겁니다. 몹시 비통했어요. 의사가 되면 빨리 개업해 돈을 벌어 복지시설을 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서 호스피스사역을 비로소 시작하게 된 거죠.”

심 목사 형제가 말기환우 자녀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세례를 베풀고 있다. 

“천국으로 보내드릴 기회입니다”
1999년 10월 마침내 천안에서 ‘사랑의 호스피스’가 창립됐다. 심 병원장은 당시 말기 암환자를 가정 방문하며 무료로 진료했다. 점심시간까지 아껴가며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돌봤지만, 늘어가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쳤다. 그래서 2001년, 국내 세 번째 호스피스 시설 ‘평안의 집’의 문을 열었다. 의사가 무료로 운영하는 최초 시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도 주목하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평안의 집’ 건축 과정에서 사기도 당하고, 엄청난 부채도 감내해야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이끄셨다. 자연스럽게 자원봉사팀도 꾸려졌다. 사역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면서 2004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사랑실천재단을 설립했다. 천안 최초로 보건복지부 등록 요양원으로 지정됐다. 

지경은 더 넓어졌다. 7년 전에는 선한이웃요양병원을 완공하고 작년에는 증축까지 하면서 더 많은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다. 심석규 원장은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고 항상 고백한다.

“의사들에게 죽음은 패배입니다. 회피하려고 하죠. 하지만 제게는 하나님을 만나고 천국으로 보내드릴 기회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도 놓치지 않고 영접하게 해야 할 사명이 우리 형제에게는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이곳에서 주님을 만났다. 유명한 무당도 있었고, 사찰의 주지도 있었다. 주님을 만난 그들은 구원에 감격스러워하며, 감사의 편지를 유서처럼 남기고 천국으로 향했다. 

천안 선한이웃요양병원 전경. <br>
천안 선한이웃요양병원 전경. 

‘소망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심석규 원장은 매일 두 차례 회진하며 환자들을 만난다. 흔한 경우가 아니다. 환자들과 대화하고 몸과 마음 상태를 확인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 가족과 본인이 원하면 병실에서 세례를 베푸는 시간도 갖는다. 갑자기 죽음을 앞둔 환자가 있는 경우, 심 병원장은 형님에게 연락해 영접 여부를 확인하며 도움을 요청할 때도 종종 있다.

“제가 미처 챙기지 못했나 싶어 급한 마음에 연락하면 형님이 언제 복음을 전했고, 영접하셨다고 말씀해줍니다. 급한 환자를 진료하고 있거나 외부에 있을 때는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병원 1층에는 ‘소망실’이 있다. 소망실은 곧 임종을 앞둔 환자가 대기하는 공간이다. 죽음 앞에 선 누군가 있는지, 형제는 소망실을 지날 때면 항상 들여다보곤 한다. 혹시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까봐, 혹시 영접을 못한 환자가 있을까봐 확인하는 일종의 습관이다. 환자가 있으면 외롭지 않게 꼭 손을 잡아주고 다시 한번 천국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전해준다.

“천국 소망을 다시 말씀드리면 임종을 기다리는 분들이 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가족들이 눈물만 흘리다 이별하지 않도록 돕기도 합니다. ‘좋은 안녕’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환자 귀에 사랑한다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라고 권합니다. 아름답게 이별하면 자녀들은 부담을 덜고 고인과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게 되거든요.”

천안노인전문요양원 ‘평안의 집’ 전경 

섬김의 꿈, 지경을 더 넓게
백세시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좋은 병원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병원 설립정신과 역사, 의료시설을 보면 선한이웃요양병원과 천안노인전문요양원(평안의 집)은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병원 우수성을 인정받아 산재지정병원으로도 지정됐다. 급성·만성 중환자들을 위한 집중치료실, 신장내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인공신장실, 재활치료를 돕는 물리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양·한방 협진까지 가능할 정도로 의료 인프라가 매우 뛰어나다. 

무엇보다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박애정신(Compassion), 이웃을 섬기는 마음(Service), 사랑의 실천(Action)이라는 CSA 호스피스 정신이 마음을 끈다.

형제의 섬김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8년째 운영해온 가정형 돌봄공동체 ‘해피홈’을 더 확산시켜 더이상 우리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비전이 있다. 무엇보다 선교사들과 협력해 해외 각처에 선교병원을 세우는 꿈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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