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30일까지 스페이스 중학서
성경 말씀…‘물과 빛, 바람’으로 조명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손때 묻은 오래된 성경책도 한 구절 한 구절 낱장을 빼곡히 채운 필사책도 언젠간 사라지고 말겠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담긴 사진은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다. 유구한 역사의 순간도 결국은 셔터소리와 함께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진다.
사진작가 이상윤 초대전이 기호의 종말 첫 이야기 ‘성경을 그리다’는 주제로 9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스페이스 중학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전은 ‘기호로서의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시도로 오래된 성경책과 필사본 성경책을 비롯해 성경 그 자체를 사진에 담았다.
작가는 모든 미디어의 속성이 기록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그는 그동안 열 번의 개인전을 열어 오래된 물건과 수장되고 사라진 마을의 풍경, 유물 발굴 현장의 흔적 등을 기록하고 발표해왔다.
지난 9일 전시관에서 만난 사진작가 이상윤 교수(배제대)는 “이번 전시전은 기호로서의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시도”라며, “신적 구원과 인간의 욕망 사이에 놓인 ‘성서’라는 매개체를 통해 믿고 갈등하고 읽고 만진 것들의 욕망과 흔적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인간의 많은 행위로 이뤄지는 작업은 대체로 기록성에 의존한다. 모든 미디어의 본질은 시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지식을 기록하고 보전함으로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인간의 욕망에 따라 변화‧왜곡되기 마련이다.
이 교수는 “어쩌면 성경마저도 그러한 기록성의 역사일지 모른다”면서 “성경책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막상 전시를 한 뒤에 그는 “성경을 겉으로 드러난 책으로서의 물성과 이미지에 지나치게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반성의 말도 전했다.
전시전은 총 4가지 주제의 작업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작업은 시간의 역사가 깃든 오래된 성경책에 담긴 신앙의 흔적을 기록한 사진이다. 오랜 세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누군가는 그 책에서 평화를 간구하고 분노와 화를 누그러뜨리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을 것이다. 작가는 겉으로 드러난 책의 모습만으로 결코 포착하기 힘든 절대자의 흔적을 함께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사진에 담았다.
두 번째 작업으로 ‘필사본 성경’ 전에서는 저마다의 간절한 소원을 담아 한 글자씩 써내려 나간 성경 필사본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피사체로 렌즈에 담았다. 전시된 네 권의 필사본 성경에는 자식을 군에 보내고 제대할 때까지 기도함으로 필사한 권사님의 바람, 온 가족의 평안을 바라며 필사한 장로님의 바람, 사법고시의 어려운 관문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 아들을 위해 펜을 들었던 어머니의 바람이 담겨있다.
이 교수는 “눈에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들의 정성이 일으킨 바람을 카메라 렌즈에 담고 싶었다. 늘 어디에나 계시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바람으로 표현된 것처럼 그들의 바람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물 시리즈’다. 물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더러움을 정화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또 쉽게 담기기도 하지만, 흘러내리기도 하며 또 어떨 때는 차마 담을 수 없는 거대함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인간에게 잠재된 욕망과 측량하기 힘든 믿음의 용량을 표현하고자 했다.
마지막 네 번째 작업은 ‘빛 시리즈’다. 우리는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뿐더러 사물을 분간할 수도 없다. 진리와 진리 밖의 세상은 빛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번 시리즈에서는 나의 신앙을 투영해보는 작업으로 사랑의교회 암송 72구절에 담긴 의미를 양상으로 담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는 “결국 모든 바람은 그분을 보게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빛과 물, 바람을 통해 보려 한 것이다. 비록 미욱한 신앙의 렌즈라고 할지라도 그분의 숨결을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