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토론 - ‘제비뽑기 폐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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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토론 - ‘제비뽑기 폐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승인 2004.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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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부총회장 선거의 과열과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비뽑기’가 지난해부터 폐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예장합동총회가 3년 전 전격 도입, 교계 선거제도에 파란을 일으켰지만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벌써 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비 민주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제비뽑기 폐지에 대한 찬반 여론을 들어보았다.

찬성

모든 권리 극소화시키는 ‘부정적 요소’ 내재

이종겸목사/성북교회 원로목사

합동총회가 지난 3년 동안 제비뽑기로 선거를 시행한 결과, 돈 쓰는 부정·금권 선거를 막아 부정 거래를 최소화하는 데 좋은 효과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다음에 지적할 문제들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도 있어 여기서 그 점을 밝혀 재고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제비뽑기 제도가 시행되기까지 몇 해 동안 찬반론이 대두되다가 4년 전 진주교회에서 열린 합동측 9월 총회 때 그 시행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다음 해 총회 전에 거센 반발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 사회를 맡았던 김동권총회장이 사명을 갖고 통과시켰다. 이와 함께 광명시 염광교회 박광재목사가 지난 10년 동안 제비뽑기 선거제도 도입을 적극 홍보한 가운데 본인도 이에 적극적으로 후원함으로써 제비뽑기 도입과 정착에 상당히 노력했다고 하겠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3년 동안 시행을 한 제비뽑기 선거제도는 아무래도 재고돼야 할 견지에서 또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렇게 방안 제시를 하게 된 것이다.

예장통합총회는 2년 전인 지난 87차 총회를 연 영락교회 총회에서 ‘부총회장 추첨제’라는 명칭으로 선거제도 개혁안을 결의, 좋은 반응을 보인 바 있으며, 또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마련한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여기에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총회 전에 무르익은 감독(감독회장) 선거의 제비뽑기 선거제도 도입 건이 정작 총회에 들어서면서 반전돼 부결됐다. 감리교는 기존에 했던 대로 민주 공화식 선거방법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 부정 선거, 금권 선거 없이 깨끗한 선거로 진행된다면야 이같은 투표 방식은 백번 옳은 일이다.

제비뽑기 선거제도는 계속되는 감시와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부정 선거를 차단하는 한 방편, 즉 차선책의 방법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금권·부정 선거를 막을 도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시행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근 1세기 간 시행했던 선거제도를 순식간에 없앨 생각을 했는지 공명정대한 선거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열망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비뽑기는,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 성경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요행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하게 나타나고 있어 문제다. 이같은 분위기는 후보자 난립을 초래하는 근거가 되고 있어 선거에 임하는 입후보자들의 은인자중을 더욱 강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선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선거 방법 때문이 아니라 선거에 나서는 인물이 내세우는 ‘정책적인 신념을 공개적으로 확인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정책 공약에 유권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 역시 바로 그들의 정책 신념을 확인하고,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지지를 표명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는 피선거권자인 입후보자나 선거권을 가진 총대 의원이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는 유일의 방법인 것이다. 제비뽑기는 단지 금권 선거라는 악습을 피하기 위해 그것도 차선책으로 시행된 제도로, 우리들의 모든 권리를 극소화시킨 부정적인 요소가 내재돼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비뽑기 선거제도는, 부정 선거를 최소화 혹은 완전 철폐하는 각오를 다지고 민주 공화식의 선거제도로 환원돼야 할 줄로 믿는다. 역으로 제비뽑기 선거를 지속한다는 것은, 영적 각성에도 무관심함을 드러내는 ‘수치의 한 단면’이라고 믿어 제비뽑기 폐지를 당당히 주장한다.

반대

제비뽑기가 오히려 ‘직접 민주주의’ 실현 방법

안광덕목사/생명목회실천협의회 총무

필자가 속한 교단(예장통합)은 올해(89회) 총회에서 작년부터 1년 더 연구하여 다시 헌의하는 ‘부총회장 추첨제 선출의 규칙 개정안’을 다루게 된다. 추첨제 개정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되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로 추첨제의 장점이 인정되어서 전 총대 과반수가 적극 찬성하고 이제 시행 규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추첨제가 약점이 있고 반대의 입장도 분명히 있어서 그러한 내용을 수렴하고 그에 대하여 보완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 있다. 추첨제의 최대 약점은 ‘후보자의 자격을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물을 정하신다는 전통적 의미의 신탁보다는 우연에 기초하여 불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부실한 자격자와 ‘되서는 안 될 사람’이 대표적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포함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선거권자들이 직접 후보자들을 뽑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 교단은 그래서인지 조금은 신중하게(?) 느림보 걸음을 걷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이즈음에 다시 한번 추첨제가 민주적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오해를 풀어 주고 싶다.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특성이요,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의 특성이다”(몽테스키외),“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본질이다”(루소)는 주장을 전하고 싶다.

추첨제 선거법 개정 운동을 진행하는 가운데 책 한 권을 소개 받았다.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이 집필한 것을 고려대학교 정치학자인 곽준혁교수가 옮긴 책이다. 필자가 이 책을 받아 본 순간,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선거’가 민주정(民主政)의 제도가 아니라고 설파했던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으로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으로 ‘추첨’을 광범위하게 사용했으며, 무려 중세기 계몽주의 시기까지 이 제도를 사용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반대자들 특히 귀족정(貴族政)의 주장자들과 17C~18C 대의(代議) 민주주의자들이 선거를 만들어 순전한 민주주의를 대치하게 했다.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있는 데 진짜는 직접 민주주의가 본류이고, 이것이 변개하여 민주주의 본류 행색을 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 형태인 것을 알았다. 대의 민주주의의 속심에는 엘리트(탁월한 자)들이 지배를 계속 유지하려는 의도가 가리워 있어서 시민(민중)들은 대의 민주주의만 진짜인줄 알고 있으며, 우리 또한 지금껏 그렇게 추첨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만 알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라는 것이다. 재산 자격에 기초하지 않은 것이 민주적인 것이고, 그에 대한 제한이 있는 것은 과두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에 만약 민주적 제도와 과두적 제도를 종합한다면 한쪽만의 특징을 가진 정체보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첨과 선거 그리고 재산 자격 조건들의 다양한 배합은 이러한 종합을 가능하게 했다.” (45쪽)

필자가 속한 교단은 지금 부회장 선출을 위한 선거법을 1차로 총대 전원이 직접선거로 3인을 뽑고, 2차 결선에 추첨으로 1인을 뽑는 안으로 연구하여 상정할 예정이다. 이것은 선거제와 추첨제의 혼합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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