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國民), 국민(國民), 궁민(窮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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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國民), 국민(國民), 궁민(窮民)을 위하여?”
  • 강석찬 목사
  • 승인 2022.03.2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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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활자(活字)를 사용하여 책과 신문을 만들 때 읽었던 콩트가 생각났다. 이런 내용이었다. 신문사마다 많이 사용하는 활자는 많이 만들고, 적게 쓰이는 활자는 적게 만들었다. ‘픽’ 자(字)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활자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활판 귀퉁이에 밀려나 소외감으로 늘 외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사마다 난리가 났다. ‘서울 올림픽’이 유치되었단다. ‘픽’ 자는 갑자기 살판났다. 그날 가장 많이 사용된 활자는 ‘픽’이었다.

요즘 신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시론자는 ‘국민’(國民) 이라고 생각한다. 연일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뉴스를 들어보면,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하여”라는 문장을 쏟아내고, ‘국민’이라는 단어는 끊어지지 않게 연결하여 사용한다. 국민을 위하여,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국민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위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무슨 계획을 세우든지 ‘국민을 위하여’를 끌어와 붙이고, 어떤 법을 제정하면서도 ‘국민을 위하여’라고 한다. 과연 ‘국민을 위하여’라는 말이 맞을까? 국민이 그렇다고 여길까? 국민은 ‘국민을 위하여’는 포장이고, 내용은 당리당략에 따른 이익 추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정치인들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모를 국민이 있을까? 국민을 위해서 싸운다고 할 때, 어느 국민이 싸움을 원할까?

임금이 나라(백성)를 다스릴 때를 생각해 본다. 임금을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라 했다. 그런데 ‘사람(백성)이 하늘’(人乃天)이다. 그러므로 ‘천자’(天子)는 ‘백성의 아들’이다. 임금이 백성(국민)의 뜻을 이 땅 위에 바르게 시행함이 ‘천자의 길’(天子之道)이라 하겠다. 21세기에 대통령의 길을 임금의 길로 비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겠지만, 옛 임금의 길에 대한 뜻은 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재천 교수는 오늘 대한민국 사회를 진단하면서 “대한민국 사회만큼 온갖 갈등이 한꺼번에 표면화한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질문한다. 이념 갈등, 계급 갈등, 빈부 갈등, 지역 갈등,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지식 갈등 등등 이런 갈등 요소가 공존(共存)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혼존(混存) 시대라 했다. 국민이 반으로 나뉘었으니, ‘국민을 위하여’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반쪽 국민만을 위한다는 것으로 들려지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이 되었다는 말이다. ‘국민을 위하여’라는데, “국민, 국민, 국민, 국민, 국민”을 다섯 번만 반복하면, 마지막 ‘국민’은 ‘궁민’(窮民)으로 들린다. 그래서 세계 10위권에 이른 경제 대국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부심을 세우던 국민인데, 많은 세금을 거두어 나눠주면서, 졸지에 궁민(窮民)을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뒤끝이 참 한심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당선인은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했다.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을 꿈꾸며 정치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아니다. 검사스러운 사람이었는데 국민이 끌어내어 대통령이 되게 했다. 25만 표 정도의 차이였지만,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주의 약점이긴 해도, 한 표라도 많으면 선거에서 이긴 것이다. 이제 ‘국민을 위하여’에 의존하는 나약한 국민이 아니어야 한다. 국민이 바른 역할을 할 때다. 혼존(混存) 시대를 끝내고, 공존(共存) 시대를 이루기 위해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바르게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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