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모독한 앗수르의 만행에 죽음을 각오한 왕 ‘히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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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모독한 앗수르의 만행에 죽음을 각오한 왕 ‘히스기야’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12.2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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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사 36:4)

여호와 신앙으로 유다를 이끌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히스기야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왕위에 오른 지 14년이 되던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 코앞까지 다가온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외곽 방어선 라기스 성은 궤멸 직전인데, 산헤립의 사신 랍사게가 예루살렘으로 행군해 히스기야의 신하들을 불러냅니다. 절대강자의 위치에서 보내는 산헤립의 메시지는 극히 모욕적이었습니다.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도대체 뭘 믿길래 여태 항복하지 않는가라는 말입니다. 랍사게는 압박과 회유의 전문가입니다. 그의 언사는 이스라엘 신앙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합니다. 앗수르의 군사력을 모를 리 없는 유다가 항복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도대체 힘없는 변방의 신 여호와를 믿고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지 훈계하는 랍사게를 상대하기란 히스기야와 그 신하들에게 참으로 큰 고역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하건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에서 우리에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12절) 유다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히브리어로 소리지르는 랍사게를 상대하던 관원들이 간청합니다. 제발 당시 근동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이야기해달라, 백성들 앞에서 히스기야 왕과 여호와를 모욕하지 말아 달라는 뜻입니다. 힘과 실익의 계산에 철저하지만 상대의 면을 세워주는 예의도 갖춰주는 것이 외교입니다. 그런데 랍사게는 그 최소한의 예의도 거절합니다. 목소리를 더 높여 유다 방언으로 모욕을 이어갑니다. 너희만 들으라고 내가 온 줄 아느냐. 우리가 공성을 시작하면 결국 제가 싼 똥오줌을 먹어야 할 처지인 너희 백성들이 듣고 아우성쳐야 정신을 차릴 것 아니냐… 너희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믿으라 큰소리치거든 믿지 말라.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지켜주시라는 헛소리를 듣지 말고, 어서 앗수르의 왕 산헤립에게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주고 이전처럼 농사짓고 살게 해주마라고 거들먹거립니다(13~17절).

랍사게는 앗수르에게 저항했던 나라들이 겪은 처참한 운명을 상기시키면서 가망 없는 저항을 포기하고 얌전히 속국이 되라고 훈계합니다.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18~20절)

이 말을 듣고 있던 신하들과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입고 있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돌아가 랍사게의 말을 전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히스기야도 왕복을 찢고 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찢은 것이 어찌 옷뿐이었겠습니까. 임금과 신하가 모두 죽은 목숨으로 치부하고 하나님께 엎드리겠다는 결의를 보이며 이사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37:3~4)

놀라운 전언입니다. 앗수르의 왕이 살아계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훼방하였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이 싸움은 유다와 히스기야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독자는 궁금해집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될지 말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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