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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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끄러움
  • 이진형 기자
  • 승인 2021.12.21 0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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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됐다. 보고픈 이들과의 만남도, 연말 모임도 모두 취소되고 다시 집콕이다. 짧게나마 위드 코로나가 가져다준 희망 때문에 자칫 ‘멘붕’이 올 뻔했지만, 연일 7천 명대를 넘어가는 확진자 수를 지켜보며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터라 비교적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하는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본 순간, 겨우 부여잡았던 멘탈이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댓글창에는 정부의 방역 대책을 보도하는 기사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교회를 향한 원망과 비난이 가득했다. 댓글을 쓴 사람들은 코로나19 전파의 주범으로 교회를 지목할 뿐만 아니라 최근 불법촬영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기독언론사 회장 아들부터 오미크론 전파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진 목사 부부, 그리고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이 양모까지… 여러 기독교인을 등장시키며 강한 혐오와 분노를 쏟아냈다. 속상함과 억울함도 잠시, 이내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부끄러움의 원인은 ‘내가 저런 사람들과 같은 기독교인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건 ‘지금까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가까웠다. 한국교회에 대한 시선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허나 욕을 먹는 건 수많은 기독교인 중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궁색한 변명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속속들이 드러나 버린 우리의 민낯을 마주할 때가 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줘야 할 교회가 오히려 사람들의 짐이 되어버린 현실을 말이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끌어안았던 작가들이 있다. 시인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모른 체하던 시대를 향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며 일침을 가했고, 소설가 박완서는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며 위선과 가식을 비판했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두 사람의 수치심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제는 부끄러움을 우리의 몫으로 가져오자.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것은 오직 복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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