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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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결정적 순간
  • 이진형 기자
  • 승인 2021.11.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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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cisive Moment. 대학 시절 사진이 배워보고 싶어 무턱대고 수강했던 교양수업에서 사진학과 교수님은 이 짧은 표현 하나로 한 학기 내내 수업을 진행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렌즈가 맺는 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로움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라는 심오한 이야기를 남겼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도로 이해할 뿐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수능시험일, 우리 인생에도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첫 번째로 꼽을게다. 지난 주일 기자가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는 교회에서는 예배가 끝난 후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열아홉 꽃다운 아이들은 교회 공동체의 관심과 응원에 고마워하면서도, 가차 없이 지나가야 하는 엄혹한 순간을 결국 스스로 감당해내야 한다는 현실이 버거운 듯 조금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미래의 운명을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짓게 된다는 무거운 압박감에 짓눌려있는 제자들이 안쓰러웠다.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결정적 순간이 행운일 뿐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는 백조의 발처럼 ‘결정적 순간을 위한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을 강조했다. 그래서 한 평론가는 "브레송의 사진은 시선이 붙잡은 찰나의 기억들을 성실하고 완전하게 재현하려는 노력의 결과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 세상만사에 우연은 없다. 피나는 노력이 있을 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는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다. 암울한 현실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인 우리에게는 노력보다는 운과 요행으로 결정적 순간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시대정신이 뿌리를 깊게 내린 듯하다. 수능시험을 치르고 세상에 발을 딛게 될 사랑스런 청춘들이 빚투와 코인에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찰나의 시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수험생들이 부디 후회 없이 전심전력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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