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 언제나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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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 언제나 한결같이…
  • 승인 2004.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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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핵집목사/열림교회

몇 년 전 산동네 지하에서 목회를 할 때의 경험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뒷편에 작은 산이 있었는데 거기에 약수터가 있었다. 약수터로 가는 길이 나무로 덮여 있어서 지하에서 목회를 하는 내게는 항상 작은 쉼터가 되곤 했다. 그 물을 먹고 위장병을 고쳤다는 사람들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약수터를 찾는 편이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물통을 들고 약수터에 가면 물을 받기 위한 물통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본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기 때문에 물 한 통을 받으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 약수터는 가뭄에나 장마철에나 똑같이 물이 나오는데 물줄기가 아주 가늘었다. 물 한 통을 받으려면 끈질긴 기다림이 필요했다.

물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는 동안 지루함을 잊기 위해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해보지만 여간해서 물통이 줄어들지 않는다. 저렇게 물통이 많을 때는 물이 좀 많이 나오면 좋으련만…. 그러나 약수터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 하고는 상관없이 물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어느날 새벽 2시에 잠이 깨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예배 때 일어나지 못하겠다 싶어 물통을 들고 그 약수터를 찾았다. 캄캄하고 적막이 감도는 약수터는 아무도 없고 그 아까운 물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작은 물줄기로 졸졸 소리내며 흐르는 약수터에는 이른 새벽부터 줄지어 있는 물통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리며 약수를 받던 나로서는 그냥 흘려보내는 약수가 참 아까웠다. 마음속으로 이런 때는 좀 흘려보내지 말고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 흘러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수터는 말없이 아까운 물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때 약수터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목회도 저렇게 해야겠구나. 사람이 많이 있다고 우쭐거리고 사람이 없다고 실망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주변을 바라보는 내 모습, 지나치게 성과주의에 매여 있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에게 주어진 능력껏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디 가더라도 진실되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통이 많이 늘어서 있다고 물을 많이 흘려보내고 물통이 없다고 물을 중단하는 것이 오늘 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한결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물을 흘려 보내는 약수터. 사람들이 찾든 찾지 않든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약수터에서 보았다. 조그만 일에도 흥분하고 주변의 환경에 마음이 조석으로 변하는 나에게 약수터는 스승이 되었다. 산동네 깊은 지하에서 목회를 하던 때이지만 가까이에 있는 약수터는 내가 찾을 때마다 나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소리없이 조용히 자신을 내어 주는 약수터를 보며 큰 위안을 얻었다. 내적 고요함, 평안함, 나를 추스릴 수 있는 힘을 작은 약수터를 통해 얻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바로 이 약수터에서 찾은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그 지역을 떠나 목회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약수터는 말없이 자신을 내어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약수터는 지금 내 안에서도 소리없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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