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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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셋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1.09.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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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봅시다 / 요한복음 15:1~6, 마태복음 3:8~10 / 찬송: 169장

모든 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하여 꽃을 피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성숙한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신앙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합니다.

잎사귀가 없는 나무는 곧 고사되고 맙니다. 잎사귀의 활동이 활발해야 그 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활동적인 신앙은 영적인 호흡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결실이 되어야 합니다. 잎이 무성하지만 결실이 없어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나무도 있습니다. 과실나무를 심는 목적은 과실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의 결실입니다. 신앙의 결실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함은 바로 신앙의 열매입니다.

결실된 과실은 벌레가 먹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들의 신앙에 흠을 내려고 끊임없이 우리들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일생동안 사는 동안에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환난과 고통과 시험과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성도들이 끊임없이 당해야 하는 고난은 바로 믿음을 연단시켜 성숙된 믿음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고난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허락해주소서.

윤양표 목사 / 경성교회

 

화요일 / 예수의 심장 / 빌립보서 1:8 / 찬송: 450장

그리스도인은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심장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의 심장을 가진 구속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갈지언정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어서 복음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행 20장 24절에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까지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무엇이기에 이를 위해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복음은 곧 영적생명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라도 결코 놓칠 수 없고 포기 할 수 없는 가장 귀한 보배 같은 것입니다. 이 생명의 복음을 누군가 들려주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를 받을 것 같다고 했고 주님도 복음의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롬 10장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 주는 자가 있어야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정국이라 해도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교회의 사명을 잊은 것일 것입니다. 예수의 심장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의 정열을 가지고 힘써 달려갑시다.

•오늘의 기도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 해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됩시다.

김만열 목사 / 청주영안교회

 

수요일 /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 / 잠언 15:25~33 / 찬송: 455장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일까요? 얼굴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본문은 사람의 행복이 재산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열심히 살기만 하면 그 시대와 그 나라 환경에 맞게 살아가도록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쌓아놓은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 걱정하고 그 재물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그뿐 아니라 끊임없는 탐심과 정욕으로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 위하여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재산이 적어도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겸손’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겸손’으로 사는 것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겸손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보며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사람 앞에서 바르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옵소서.

유영삼 목사 / 영광교회

 

목요일 / 지금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 요한계시록 2:14~16 / 찬송: 273장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던 버가모교회 성도들이 왜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이 멸망으로 이끄는 잘못된 것인 줄 모르고 따라 행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스스로 구원받았고 의롭게 되었다는 교만한 생각에 도취 되어 육체를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남들보다 더 잘살 수 있을까만 몰두하며 육체가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집착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처럼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당연히 잘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버가모교회 성도들의 모습과 닮은 점은 없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좀 더 많이 소유하고 출세하고 성공하여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더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그런 버가모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육체를 위하여 세상을 향해 가던 우리의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있다면 지금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적인 가치로 세상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온재천 목사 / 광혜교회

 

금요일 / 교회의 사명 / 골로새서 1:19~29 / 찬송: 218장

교회는 스스로 사명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왕의 메시지는 선택하거 거부할 수 없습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수여하신 명령을 교회는 자발적으로 수행합니다. 교회 사명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교회가 사명을 수행할 때마다 높은 권위의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지시를 받아 행동합니다. 또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파송을 받은 사람은 명령을 변경하거나 의지에 따라 사명을 재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를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은 다른 계획이 명시되거나 언급하지 않습니다. 지상에서 하나님은 교회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바울의 언어로 서술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주신 사명의 본질은 교회에 의뢰하는 사명과 똑같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우선 하나님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세상을 향해 선포합니다. 교회는 우주적인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가졌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임으로써 하나님 말씀을 알리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신자들의 성장과 안정을 격려합니다. 교회는 보편적 복음과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복음은 경고와 가르침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의 확신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는 사명것도 교회의 사명입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 복음을 세상에 전하며 살게 하소서.

정석동 목사 / 창성교회

 

토요일 / 혈루증 여자의 믿음 / 마가복음 5:21~34 / 찬송: 471장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서 그 집을 향해 가시던 중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그 가운데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가산을 탕진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도리어 더 증상이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이 여자는 소망과 순전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이 여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자기가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나음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으로 손을 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라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져 구원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구원함을 이루었음을 모든 사람에게 교훈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의 육체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그녀의 영적인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주님께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그리고 이분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나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이여자의 심정으로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응답을 들으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주님의 응답과 역사를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서기성 목사 / 새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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