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난한 교회
상태바
[기자수첩] 가난한 교회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1.08.17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의 시야는 좁다. 껌뻑거리는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것 이상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기후위기’를 외치며 부르짖는 절박한 외침은 부단히도 대중들에게 외면 받아왔다. 당장 내 배를 불려줄 쌀과 돈이 눈앞에 있는데 거대한 지구의 신음이 귀에 들릴 리 만무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기후위기라는 아젠다가 대중들의 논의 선상에 올라섰다. 달나라 우주여행만큼이나 막연했던 지구의 아픔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해서일 테다. 창조세계의 청지기라는 직분을 부여받은 교회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노력에 조금씩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연했던 기후위기는 대응조차 막연하다. 교회도 무언가 힘을 보태고는 싶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허둥댄다. 국가와 산업이 주도하는 거대한 흐름 앞에 교회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무력감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 들리는 한 목회자의 제안은 통념을 비틀어 부순다. 그가 제시한 교회의 실천 방안은 ‘가난’이다. 지구를 위해 돈을 쓰고 힘을 써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교회의 본질이 가난이라고 정의한 그는 성장을 향한 욕망, 물질을 향한 집착을 멈추라고 제안한다.

사실 돌이켜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태껏 부흥이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건축과 소비가 이뤄졌다. 성장의 이면에 사용된 전기와 에너지, 배출된 쓰레기를 생각하면 기후위기의 책임에 교회가 면죄부를 받기는 힘들다.

풍족이 죄고 가난이 선은 아니다. 성경도 일방적으로 물질이 나쁜 것이라고만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라면 얘기가 다르다. 소유를 줄이는 가난은 분명 창조세계에 있어 선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다른 이들은 쉽게 할 수 없는 내려놓음을 교회는 기꺼이 실천할 수 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교회를 넘어 가난한 교회를 고민해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