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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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슬람이다
  • 승인 2004.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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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지목사/목양교회

교회의 2천년 역사를 살펴보면 매 시기 성령의 역사가 흥왕했었던 지역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초대 교회 시절에는 예루살렘, 중세 교회는 로마, 근세교회의 중요한 사건들은 유럽을 무대로 해서 발생했고 그 다음에는 미국이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얼마 전까지 한국을 중심으로 한 제 3세계권에서 교회가 부흥했다.

1980년대까지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은 여기서 근거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중국이 성령의 역사가 가장 왕성한 곳으로 꼽힌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사회주의 국가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이틀에 세 개꼴로 교회가 세워지고 하루에 5만 명의 결신자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어디일까? 선교학자들은 이슬람권이라고 공통으로 증언한다. 지금까지 성령 역사가 왕성했던 지역들을 연결해보면 일정한 방향이 있다. 그 연장선상에 이슬람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유대권이 종착점임을 알게 된다. 최근의 일들이나 이슬람권 변화들을 이슬람권 복음화의 전조라는 관점에서 보면 수긍되는 점들이 많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슬람권 선교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할 때가 됐다. 김선일 형제의 일도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의 내용이 자세하게 밝혀질수록 고인이 이슬람권 선교에 대해서 얼마나 뜨거운 정열을 품고 있었는지가 소상하게 밝혀지고 있다.

그는 이슬람 선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었고 가나무역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이라크 여성과 결혼하려고 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이슬람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의 유품 가운데서 아랍어 성경이 나온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선일 형제의 죽음은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선교사를 생각나게 한다. 토마스선교사는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통역 자격으로 1866년 6월 대동강에 이르렀다. 제너럴셔먼 호의 선원들과 평양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제너럴셔먼호는 화공으로 불탔고 토마스목사는 참수형으로 순교를 당했다. 이 일을 두고 “토마스 목사의 피가 흐른 대동강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김선일 형제의 죽음은 토마스목사의 순교와 공통된 점들이 있다. 아니 이 두 죽음을 공통된 것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1918년, 침례교에서는 시베리아의 연추와 수청지방 선교를 위해 박노기(朴魯琦)목사를 비롯한 네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들이 탄 배는 목적지를 앞두고 보시엘해(海) 모커우에서 풍랑을 만나 모두 순직했다. 연추와 수청지방 주민들은 이 비보를 듣고 ‘우리를 위해 전도하러 오다가 희생당했으니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어 보답하자’는 운동이 일어나 그 지방의 교회가 놀랍게 부흥했다고 한다. 이 일을 아는 분들은 네 분이 현지에 도착해 전도를 했어도 교회가 그만큼 부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선일 형제의 죽음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끝으로 김선일 형제의 장례를 교회가 주관해 ‘우리는 이라크를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로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교회는 이 일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라는 교회 때문에 장례가 잘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을 알고 교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김선일 형제의 죽음을 ‘이제는 이슬람이다’라는 깨달음을 교회에 주는 고귀한 희생으로 승화시켜야 할 책임이 교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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