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마다 ‘기도’로 정면돌파… “성령이 이끄시는 비전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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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마다 ‘기도’로 정면돌파… “성령이 이끄시는 비전의 공동체”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1.04.0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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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보다 은사 중심, 젊고 역동적인 신앙 검단중앙교회

여기 젊고 역동적인 교회가 있다. 모두들 코로나를 탓할 때, 묵묵히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이웃을 섬기고 예배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참예배자’를 길러내는 곳, 바로 인천 서구에 위치한 검단중앙교회다. 

검단중앙교회는 올해로 설립 31주년을 맞이한다. 하지만 강신창 담임목사가 작은 지하실에서 목회를 시작한 것은 1988년, 33년 전이다. 강신창 목사는 검단중앙교회의 역사를 ‘기도’라는 한 단어로 압축한다. 개척 후 1년 반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던 ‘산기도’는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목회 중 찾아온 숱한 위기의 순간에도 강 목사는 ‘기도’로 정면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찾아오신 성령님은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기도의 능력을 알기에 강신창 목사와 검단중앙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기도하며 기도의 응답을 삶으로 고백하고 있다. 

검단중앙교회 강신창 목사는 “목회는 기도”라고 말한다. 위기 때마다 기도로 돌파했고, 그때마다 성령의 도움을 입었다.

1년 반 산기도, 목회의 시작
“목회는 기도입니다.” 매일 새벽, 성도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도의 자리를 지켜온 강신창 목사는 “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목회 자체가 어렵다”고 말한다. 기도가 약해지면 교회는 세상에 점령당하기 쉽다. 인본주의 가치가 들어오면 영적 권위가 무너진다. 목회자가 기도를 잠시도 쉴 수 없는 이유이자, 영적 공동체인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비결이다. 

강신창 목사는 외가로부터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교회를 멀리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청년이 되었고, 희망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절망에 빠진 스물넷의 어느 날, 교회에 다시 걸음하게 되었다. 

“여의도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있었어요. ‘뭐지?’하는 생각에 따라갔더니 여의도순복음교회였죠. ‘진짜 하나님이 있나’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얼떨결에 예배당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주님을 만나자는 각오로 매일 저녁 철야예배에 참석하고 새벽예배를 드리고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했죠.”

그렇게 6개월을 기도해도 방언조차 터지지 않았다. 새벽예배와 철야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는데 참으로 야속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성전 문을 향하던 로비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서 성경이 믿어지고 천국과 죄의 문제가 깨달아졌다. 예배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는 성령을 받았다. 강 목사는 그 순간을 단 몇 초의 짧은 시간으로 기억했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하나님의 은혜, 하늘의 소망을 알게 되면서 저는 1년 내내 울면서 다녔던 거 같아요. 성령의 감격이 그치질 않았어요. 성령님이 임하신 이후로 세상으로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 기쁨을 전하기 위해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신학교 2학년 때 교회도 개척했어요. 지금 검단중앙교회가 그때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의 결단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다. 뒤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인천 계산동 40평 지하실을 얻어 교회를 세웠다. 아내와 갓난아이까지 있던 가난한 신학생이 용감하게 개척한 곳은 걸핏하면 침수되는 열악한 동네였고 성도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힘이 들 때 그가 찾은 곳은 계양산이었다. 매일 저녁 산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산 정상 밑에 공동묘지는 그가 기도하는 곳이었다. 웅덩이처럼 파인 빈 무덤에서는 그는 비를 피해가며 기도했다. 1년 반, 그렇게 연단의 시간이 지났다. 

 

강신창 목사, 개척 후 산기도로 연단…검단 정착 후 부흥 거듭
교회 건축 후 찾아온 위기 기도로 극복, ‘목요철야’로 성령 체험

 

성도를 먼저 생각한 교회건축
기도훈련을 마친 후 하나님이 보내주신 곳이 지금의 검단이다. 1990년 20평 남짓한 4층 공간으로 이전해 교회를 설립했다. 공식적인 검단중앙교회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성도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고, 1년 만에 80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부흥을 거듭하면서 목회 4년차에 그는 교회건축에 도전했다. 그때가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1995년이었다. 

“교회를 건축했는데 IMF가 터졌어요. 이자가 말도 못하게 불어났어요. 감당이 안 될 정도였고, 결국 교회는 경매로 넘어갔죠.” 

강신창 목사의 목회 여정에서 가장 큰 고비였다. 성전건축을 위해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을 선 교인들이 있었다. 건축 빚을 갚을 수 없어 경매까지 넘어간 상황에서 성도들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그때 강신창 목사는 성도와의 신뢰를 지키는 것을 1순위로 놓았다. 

“이자 때문에 은행에서 헌금을 걷어갈 때였는데, 저는 헌금으로 성도들 담보를 먼저 해결했어요. 교회 건축으로 인해서 성도의 삶이 어려움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가 넘어가더라도 성도 가정의 피해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 저의 절실한 마음이었어요.”

강신창 목사의 신념에 따라 성도들과 얽힌 재정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됐다. 하지만 본질적인 건축 부채는 여전히 답보상태였다.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다. 강 목사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에 매달렸다. 성도들도 모두 기도의 불이 붙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기도가 뜨거웠다. 지금의 성전은 아이들이 먼저 요청한 것이었다. 마음껏 기도하고 찬양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10대 성도들의 열정에 다시 교회 부지를 사고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2007년 약 10년의 방황 끝이 다시 교회가 세워졌다. 첫 성전 역시 경매가 아닌 매매로 원만히 처리됐다. 꽤 오랜 시간이었지만 성도들은 끈끈했고, 무엇보다 뜨거웠다. 자칫 교회공동체가 흔들릴 수 있는 큰 위기였다. 공동체를 든든히 지켜내는 것을 넘어 2,000석의 새로운 성전 건축까지 어떻게 가능했을까?

강신창 목사는 그 비결로 ‘목요철야’를 꼽았다. 금요철야를 하는 한국교회의 전통과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다. 

“아이들의 요청으로 건축을 결심하고 땅은 샀는데, 돈은 없었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는 것뿐이었죠. 철야예배 때 은혜를 더하고자 외부 강사를 초청했는데, 금요일에는 도저히 모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목요일로 철야예배를 옮겼습니다. 부지 매입부터 완공까지 약 2년 반 동안 목요철야에 매주 400여명의 성도들이 모였고, 다녀가신 강사 목사님만 15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주5일제가 되면서 금요일에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가정이 많아지더군요. 그래서 아예 목요철야를 정착시키고 금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그가 선택한 것은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닌 공동체로서의 교회였다. 하나님의 지체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품고 기도했다. 그들의 가정과 삶이 신앙 안에서 건강히 보존되고 유지되는 것이 교회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목요철야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가족이 참여토록 했다. 기도하는 가정, 예배하는 가정, 서로 섬기며 행복을 나누는 가정. 지금도 강신창 목사는 성도들에게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한다. 

검단중앙교회 기도의 용광로 ‘목요철야’.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철저한 방역수칙 아래 기도회를 계속했다. 코로나 위기는 ‘참예배자’를 찾는 기회가 됐다.
검단중앙교회 기도의 용광로 ‘목요철야’.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철저한 방역수칙 아래 기도회를 계속했다. 코로나 위기는 ‘참예배자’를 찾는 기회가 됐다.

기도의 용광로 ‘목요철야’
금요철야 전통에서 과감히 벗어나 ‘목요철야’를 도입한 것처럼 검단중앙교회에서는 다양한 파격이 발견된다. 주방은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식당 봉사는 전원 남성의 몫이다. 교구장 역시 평신도가 맡으며, 각종 팀 사역 리더에 직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검단중앙교회에서 직분은 수직적 권위가 아니다. 집사가 팀장으로 있는 부서에 장로가 팀원으로 사역하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성도들이 직분을 떠나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40대 젊은 성도들이 교회를 찾으면, 떠나지 않고 정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흔한 ‘꼰대’ 문화가 없는 곳, 젊은 성도가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검단중앙교회는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 ‘하나님의 비전에 이끌리는 교회’, ‘끊임없이 갱신하는 교회’, 그리고 ‘평신도를 동역자로 세우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성도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알파코스와 21세기목회연구소 교재를 사용한 제자훈련을 거치면 평신도들은 역동적인 목회 동역자로 변신한다. 교회가 부흥하면서 성도들이 몰려들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 평신도 사역자로 건강히 세우기 위해 알파를 도입했다. 

실제로 성도들은 변화된 삶을 간증한다. 이연정 성도는 “알파를 마치고 나서 기도하는 삶,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삶으로 변화되었다”며 “주님의 은혜 안에서 말과 행동, 정신이 바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국선화 집사는 “나를 누르고 있는 짐들이 하나하나 줄어들어 가벼워짐을 느꼈고, 목사님의 안수를 통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경험했다”면서 “알파를 통해 가정의 소중함과 남편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되었다. 굳어 있던 영혼을 뜨겁게 달궈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간증했다. 

강신창 목사는 알파코스를 통해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준다. 코로나 이전 허깅으로 위로를 나누는 모습.<br>
강신창 목사는 알파코스를 통해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준다. 코로나 이전 허깅으로 위로를 나누는 모습.

연간 250~300명의 성도가 거쳐 가는 제자훈련은 강신창 목사와 사모 김금숙 목사가 함께 이끌어 간다. 제자훈련을 거치면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심방, 전도, 구제 등의 프로그램을 짠다. 평신도 사역은 세련되거나 능숙하지 못해도 역동성이 넘친다. 한 사람이 사역의 기득권을 쥐는 일도 없다. 장로는 교구장, 권사는 구역장과 같은 공식은 검단공동체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파코스의 경우, 한 기수가 끝나면 약 30개의 팀이 해체되고 한 달 쯤 지나고 나서 다시 또 30여 팀이 조직된다. 전문성보다 다양성을 선택한 결과다. 왜 이런 불편을 감수할까?

“한 사람이 오랜 경험을 쌓게 되면 사역이 능숙해지고, 그로 인해 목회자는 편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경험이 충분하다는 것은 교만에 빠지기 쉽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팀의 해산과 재조직을 통해 매번 새로운 리더를 세우고 다양한 구성원들이 사역을 경험하게 합니다. 기득권이 머물지 않게 다양성을 추구하고 편리함보다 역동성을 강조하죠. 성도들이 타성에 젖으면 기도를 하지 않아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직분과 사역은 다르다. 모든 성도들에게 합당한 은사에 따라 사역이 전개된다. 한 성도가 한 사역을 맡아 하는 것이 검단공동체의 특징이다. 제자훈련의 최종 목적은 자신의 은사를 나눔과 섬김, 돌봄에 각각 활용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역동적인 예수님의 제자로 서는 동안 강신창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다. 그들의 곁을 지키는 것. 제자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강 목사는 교회를 비우지 않는다. 목회자가 참석하는 훈련이니 성도들도 빠질 수 없다. 마치 하교 후 집에 오면 엄마가 기다리듯, “우리 교회엔 항상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성도들은 든든하다. 

특색있는 4교회로 분립 꿈꿔
역동적인 공동체답게 하는 일도 많다. 인터넷에서 ‘검단중앙교회’를 검색하면 지역사회를 향한 나눔과 섬김의 기사가 쏟아진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검단중앙교회는 대구지역과 교회가 속한 인천 서구에 각각 1억 원씩 총 2억 원을 기부했다. 코로나 전에는 성도들이 일일찻집을 열어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사회복지기금을 전달해왔다. 

성도들이 안 쓰는 물건을 기증해 나눠 쓰는 ‘예향뜰’ 수익금으로 매달 지역의 작은 교회에 쌀을 보내고, 5천만 원 정도는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한다. 매년 한 차례 하루를 정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성도가 헌혈에 참여한다.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곳에는 발 벗고 나선다. 이 모든 것이 성도들의 아이디어로 이루어진 헌신들이다. 

 

알파와 제자훈련 통해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수평적 교회’
은퇴 후 특색 갖춘 4개 교회로 분립 추진, 당회원도 함께 은퇴

 

31년 동안 날마다 부흥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검단중앙교회. 코로나19는 오히려 성도들의 신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고, 예배에 열심을 낸 성도들은 코로나 악재를 디딤돌 삼아 더 깊은 영성으로 무장했다. 성도들과 함께 강신창 목사가 꿈꾸는 교회의 미래는 특색있는 교회로 분립하는 것이다. 2025년까지 ‘3만 성도 3천 리더’를 세우는 비전을 바탕으로 4개 교회로 검단중앙교회를 분립, 다음세대를 키우는 교육목회를 향해 도전한다. 이미 성전 건축이 시작된 곳이 있고, 7월에 신도시에 교회 부지를 추가로 매입한다. 같은 검단공동체지만 교회마다 목적이 다르다. 또 주일학교 교육만으로 다음세대 양육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국제학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은퇴까지 10년이 넘게 남았지만 강신창 목사는 검단중앙교회가 끊임없이 갱신하며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교회 정관에는 담임목사 은퇴와 함께 당회원도 함께 은퇴하는 조항을 명시했다. 후임 목회자가 굳건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마음껏 목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는 목회자의 길로 부름을 받은 후배들도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목회자마다 특색이 달라요. 저는 지금도 목회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흥이 가능하다고 여겨요. 개척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목회를 흉내 내지 말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비전을 따라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은 단점 투성이예요. 처음에는 다 실패합니다. 하지만 단점은 목회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단점으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만들죠.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 단점을 장점으로 변화시켜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얼마든지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반드시 성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말한 성공적인 목회는 ‘부흥’이다. 교회의 부흥은 영혼구원을 통해 이뤄진다.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더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기쁘게 바라보시는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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